
한국 경제가 중동발(發) 유가 폭등으로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반도체 호황도 유가 상승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2.0% 전망을 내놓은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전문가들은 벌써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두바이유 가격이다. 정부는 배럴당 62달러를 가정했지만, 3월 첫째 주 현실은 86.1달러로 무려 24달러나 높다. 전주 대비로만 따져도 15.6달러가 급등한 수치다.
금융시장은 이미 패닉 상태다. 코스피는 12% 이상 급락하며 5,100선이 붕괴됐고, 원화 환율은 17년 만에 1,500원을 돌파했다. 2월 한 달간 외국인 자금 13조 4,000억 원이 빠져나갔고, 한국형 공포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80.37까지 치솟았다. 증권가에서는 “6,000선마저 위태롭다”는 비관론이 확산 중이다.
유가 시나리오별 성장률 ‘쇼크’ 시뮬레이션

현대경제연구원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과거 오일쇼크처럼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이다.
2.0% 전망이 1.2%로 쪼그라드는 셈이다. 씨티 연구진은 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내놨다. 브렌트유가 82달러대를 계속 유지하면 성장률이 0.45%포인트 떨어진다는 것. 이 경우 1.55% 성장에 그친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실장은 “정부가 2.0% 성장률을 제시했는데 중동 사태 격화 정도에 따라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그는 “세계 주요국이 전쟁 대응을 위해 추경 편성 등 확장재정 정책을 펼칠 수 있어 하방 압력을 일부 완화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도 덧붙였다. 국제금융기관들의 일반적 추정에 따르면, 유가가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성장률은 0.1~0.15%포인트씩 깎인다.
‘외날개 비행’ 반도체마저 흔들리나

그간 한국 경제는 반도체가 버티면 전체가 버티는 ‘외날개 성장’ 구조였다. 1월 반도체 생산이 4.4% 감소했지만, 정부는 “연말 집중 생산 이후 일시적 조정”이라며 낙관했다.
AI 확산으로 HBM(고대역폭 메모리) 같은 고사양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판단이다. 가톨릭대 양준석 교수도 “전쟁 발생 후에도 AI 관련 주식이 상승하는 걸 보면, 투자자들은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불안 요소가 많다. 반도체는 대부분 항공 운송하는데, 중동 분쟁으로 영공이 폐쇄되면 물류비 상승과 운송 지연이 불가피하다.
더 심각한 건 에너지 가격이다. 반도체 생산은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산업이라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직격탄을 맞는다. 양 교수는 “천연가스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반도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성대 김상봉 교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반도체 사이클이 내년 하반기께는 끝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반도체에 기대서 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냉정한 진단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로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경기는 침체하는데 물가는 오르는 최악의 상황이다.
유가 급등은 단순히 기름값만 올리는 게 아니다. 원화 약세(1,500원)와 결합하면 수입 물가가 동반 상승하고, 이는 곧바로 국내 소비자물가로 전이된다.
씨티 분석에 따르면 브렌트유가 82달러대를 유지할 경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6%포인트 추가 상승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 심리가 위축된다. 정부가 올해 성장의 두 축으로 내세운 게 ‘반도체 수출’과 ‘내수 회복’인데, 이 중 내수 회복 기대가 흔들리는 것이다.
물류 차질로 수출기업들도 비상이다. 운송 지연과 운임 상승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면서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수출입은행·산업은행을 통해 20조 3,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마련했지만, 시장에서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코스피 6,000선이 핵심 관찰 대상이다.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기준으로 5,800~6,300 구간이 기술적 저항선인데, 일부 증권사는 이마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연합뉴스TV 분석에 따르면 “현재 상황의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아 조그만 호재에도 반등하고 악재에 급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금융시장의 급등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