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 전략이 단기 지표상으로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은 관세 폭탄을 피하려 중국산 제품을 앞당겨 사들이고, 중국은 막대한 수출 대금과 달러 약세에 힘입어 외환보유액을 크게 불렸다.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흔들어 무역 협상 우위를 쥐려던 트럼프 행정부의 계산이 오히려 중국의 ‘버티기 체력’만 키워주는 방향으로 꼬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 4105억 달러로 전월 대비 684억 달러 증가했다.

우리 돈으로 약 100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 한 달 만에 불어난 것으로, 최근 28개월 사이 가장 큰 월간 증가 폭이다. 공식 금 보유량 역시 18개월 연속 늘리며 다방면으로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선주문’이 불린 외환 곳간의 역설
이러한 외환 급증세의 이면에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만든 시장의 역설이 숨어 있다.
관세가 추가로 인상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자, 미국 내 수입업체들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당장 물건을 확보하자”며 이른바 ‘밀어내기 선주문’에 나선 것이다.
타격을 받아야 할 중국 공장들이 오히려 쉴 틈 없이 돌아가면서 수출 지표가 예상을 깨고 크게 치솟았다.

물론 100조 원이 모두 순수 무역 흑자로 벌어들인 돈은 아니다. 달러 가치 하락과 글로벌 자산 가격 상승이 맞물리며 중국이 보유한 비달러 자산의 장부상 가치가 뛴 영향도 크다.
시장에서는 달러 약세 효과만으로 약 29조 원 수준의 자산 증가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베이징 당국은 미국의 통상 압박이나 환율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거대한 ‘현금 방어구’를 손에 쥔 셈이다.
곳간이 두둑해지자 위안화 역시 달러당 6.85위안 수준으로 안정을 찾았다. 외환 유출 우려가 줄어든 중국은 향후 무역 협상 테이블에서도 급하게 고개를 숙일 이유가 사라졌다.
오히려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의 불만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커졌다.
K수출, ‘방패’ 쥔 중국 앞 득실 엇갈려

중국의 체력이 강해진 상황은 한국 경제에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확실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원화와 증시가 같이 타격을 받는 구조다.
중국발 위기 가능성이 차단되고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 가치도 동조화되어 환율 급변동을 방어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반도체, 자동차 등 대형주에 대한 불안감을 낮춰주는 요인이다.
반면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한국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풍부한 외환보유액과 환율 안정을 바탕으로 자국 내 여력을 비축한 중국 당국은 수출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나 산업 지원을 늘릴 힘이 생긴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과 피 말리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생존력을 회복한 중국발 저가 공세를 계속 상대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관세 폭탄이라는 대외 충격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중국 제조업의 행보가 한국 경제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