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 그룹이 5년간 270조원을 지방에 투자하겠습니다.” 지난 4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나온 파격적 공약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 소멸 방지’ 요청에 재계가 화답한 형국이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또 공약인가’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과거 대기업들의 지방 투자 공약이 실제로는 60~70%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날 삼성, SK, 현대차, LG 등 10대 그룹 총수들은 올해만 66조원을 지방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6조원 늘어난 규모다. 5만1600명을 채용하고, 이 중 66%인 3만4200명을 신입으로 뽑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번 투자로 생산 유발 효과 525조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221조원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규모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실행 여부가 관건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지방소멸 방지 정책, 2020년 코로나 이후 비수도권 투자 발표 모두 계획 대비 실제 집행률이 60% 안팎에 머물렀다.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 채용과 투자가 축소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반도체·AI 회복세가 변수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간담회에서 “영업이익이 많이 개선돼 올해 더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2024~2025년 반도체 침체를 벗어나 2026년 수익성이 회복되면서 실제 투자 여력이 확보됐다는 분석이다.
투자 분야도 구체적이다. 반도체 설비 증설, 배터리 R&D 확대, AI 전환, 탄소중립 인프라 구축 등 정부가 집중 육성하는 전략 산업과 맞물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RE100 특별법 제정’과 ‘지방 에너지 가격 차등제’가 실현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지방 투자의 경제적 유인이 커진다.
기업별 채용 계획도 윤곽이 드러났다. 삼성 1만2000명, SK 8500명, LG 3000명 이상, 포스코 3300명, 한화 5780명 등이다. 신입 채용 비중이 66%로 높아 청년 일자리 시장에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중소기업 체감은 미지수”

우려도 만만치 않다. 270조원 투자가 실제로 낙후 지역까지 골고루 스며들지 의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5극3특’ 체제의 구체적 구성이 아직 불명확해, 결국 대도시 인접 지역에만 투자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역 중소기업의 체감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 투자액 대부분이 대그룹 계열사의 설비 투자로 사용되고, 지역 중소기업은 하청 납품 정도의 수혜에 그칠 우려가 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간담회에서 “AI 로봇 확산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다”며 서비스산업 고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장기적으로는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규제 완화 요구도 논란거리다. 총수들은 비공개 회의에서 기술 개발 규제와 개인정보 규제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산업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과, 개인정보 보호를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분기별 실적이 시험대

시장 전문가들은 2026년 1분기 이후 실제 투자 집행률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 사례를 볼 때, 공약 발표 6개월 이내에 실제 투자 규모와 채용 현황이 확인되면서 실행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가 실제로 이행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명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을 재정·정책 배분에서 가중 지원하는 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이 구체적 법안으로 이어지는지, RE100 특별법이 언제 국회를 통과하는지가 기업 투자의 실제 속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관련 대형주의 주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의 향후 3개월 실적 발표와 투자 계획 구체화가 주가에 반영될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증권 전문가들은 “공약 발표만으로 즉각적인 매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며 “분기별 실제 투자액과 채용 실적을 확인한 후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