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난리났는데 “한국은 괜찮나?”…전문가 의견 보니 ‘깜짝’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으로 혼란 야기
한국은 당장 안전해도 미래 전력망 병목 위험
송전선로 확충 지연될 경우 2028년 블랙아웃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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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터미널이 폐쇄되고 ATM도 먹통이 됐어요. 50분 동안 기다렸지만 이륙하는 비행기는 단 한 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리스본 공항에서 발이 묶인 네덜란드 관광객의 당혹스러운 증언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정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을 강타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유럽 남서부 지역을 마비시켰다.

이 사태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과연 안전할까?”

유럽 남부를 뒤덮은 암흑

블룸버그·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리스본 등 주요 도시가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스페인과 접경한 프랑스 남부 일부 지역도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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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신호등이 꺼지면서 교통이 마비됐고, 마드리드에서는 경찰이 직접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해야 했다.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스-알메이다 마드리드 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은 이동을 최소화하고 현재 위치에 머물러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지하철과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면서 시민들이 내부에 갇히는 상황도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속열차 운행이 중단돼 승객들이 철로 위로 대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스카르 푸엔테 교통부 장관은 “당일 중장거리 열차 운행 재개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병원과 긴급 시설은 자체 발전 설비로 가동됐으나, 주유소는 영업을 중단했으며 ATM과 전자 결제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마드리드 오픈 테니스 대회도 경기 중 중단됐고, 스페인 에너지 회사 모에베는 정유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스페인 전력망 관리업체 레드엘렉트리카는 오후 8시35분 기준 전력 용량의 35% 이상을 복구했으나, 전국적 복구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내무부는 이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한국의 전력 시스템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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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이러한 해외 사례를 지켜보며 국내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당장 대규모 정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발전사들이 전력 계통 불안정에 대비한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한국은 해외 국가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독립계통’이라는 구조적 취약점을 갖고 있다. 계통 내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복구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전력망 확충이 지연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은 한반도 남·동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집중 송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남·강원 등 동해안 지역의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AI·데이터센터 등 전기 소모가 큰 산업의 성장과 수도권 집중 전력 수요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송전망 확충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리 전력을 많이 생산해도 수요처에 공급하지 못해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8년, 현실이 될 수 있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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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더 심각한 것은 미래 전망이다. 2028년 최대 전력 수요는 107GW로 예상되지만, 현재 전력 공급 능력은 104.3GW에 불과하다. 송전선로가 현 수준에 머무른다면 약 2.7GW(원전 약 3기 규모)의 전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 이는 약 90만 가구가 사용할 전력이 모자라는 심각한 상황이다.

만약 전력망 확충이 ‘과거 10년’ 속도대로만 진행된다면, 2038년에는 예비율이 4%대로 떨어져 전력 태부족 사태가 우려된다.

한국은 이미 2011년 9월 15일 전국적 대정전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최장 4시간 45분간 지속된 블랙아웃은 교통·의료·산업 등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비상전원이 없는 중소기업, 의료장비, 승강기 등에서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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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전력망 확충과 정책 실행력 강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과잉 생산 시 출력 제한 제도 도입, 중앙정부의 행정 조정 기능 강화, 주민 보상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 확대, 유연 송전설비 확충, 구역별 전력계통 운영,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등도 대책으로 제시된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성명에서 “아직 정전의 원인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현 단계에서는 어떤 가설도 배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스페인·포르투갈 당국 및 유럽 송전 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와 연락해 정전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현재까지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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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 출처 : 연합뉴스

임수석 주스페인 한국대사는 연합뉴스에 “마드리드 일부 지역에는 전기가 다시 들어오고 있으나 여전히 통신이 두절된 상황”이라며 “현재까지 우리 국민 피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대사관은 정전 직후 통신이 두절되자 여행객들이 본부의 영사콜센터와 소통하도록 조치했다.

우크라이나의 게르만 갈루셴코 에너지 장관은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번 사태 복구에 협조하겠다고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대규모 정전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지만, 전력망 확충과 정책 실행에 실패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블랙아웃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유럽의 사례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가 당면할 수 있는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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