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가진 가장 비싸고 가장 강력한 무기가 전쟁 한복판에서 빠졌다. 이유는 미사일이 아니라 세탁실 화재였다.
세탁실에서 시작된 30시간의 화재
3월 12일, 홍해에서 이란전 작전에 참여 중이던 USS 제럴드 포드(CVN-78)의 후방 세탁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약 30시간 동안 이어진 뒤에야 진화됐다.
미 해군은 처음에 화재가 통제됐으며 작전 능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주 해군의 후속 조치는 화재가 당초 인정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재로 약 100개의 침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연기와 수해로 인해 총 600명 이상의 수병이 침실에서 쫓겨났다. 약 200명의 수병이 연기 흡입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1명은 부상으로 함외 이송됐다.
건조 중인 항모에서 매트리스 1,000개 공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는 후속 조치에서 드러난다. 아직 건조 중인 차기 항모 USS 존 F. 케네디(CVN-79)에서 매트리스 1,000개를 빼내 포드함으로 공수했다. 세탁 시설이 마비되면서 군복 세탁이 불가능해지자, 수병들에게 운동복 2,000벌 이상이 긴급 지급됐다.
미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포드함은 크레타섬 수다만(Souda Bay) 해군기지로 이동해 최소 1주일 이상 접안 수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란전 참전 중인 미 해군 최강 전력이 전쟁 도중 전선에서 이탈하는 초유의 사태다.
266일 배치, 화장실 고장, 그리고 사기 붕괴
세탁실 화재는 포드함이 겪고 있는 위기의 빙산의 일각이다. 포드함은 현재 배치 260일을 넘겼으며, 진공식 변기 시스템의 고장으로 650개에 달하는 화장실이 반복적으로 막히는 문제가 이번 배치 기간 내내 이어지고 있다.
포드함은 2025년 6월 24일 버지니아주 노퍽을 출항해 9개월 넘게 항해 중이며, 베트남전 이후 항공모함 최장 배치 기록 경신을 앞두고 있다.

승조원 가족에 따르면, 포드함 수병들은 2월 둘째 주에 “3월 초면 귀환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12시간도 안 돼 카리브해에서 지중해로 항로가 변경됐고 귀환이 5월 이후로 미뤄졌다. 일부 수병은 재입대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가족은 “이런 상황이 인력 유지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세탁실 화재가 드러낸 ‘동시 전쟁’의 한계
포드함은 10만 톤급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이란전에서 미국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핵심 플랫폼이었다. 이 항모가 전선에서 빠진다는 것은 단순한 수리 차원이 아니라, 미군의 전력 투사 능력에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다.
1960년대 미 해군 항모에서 연이은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이후, 가장 유명한 1967년 USS 포레스탈 화재 사건을 계기로 엄격한 화재 예방 절차가 도입됐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 최신예 항모에서 세탁실 화재 하나를 30시간 동안 진압해야 했다는 사실은 함정의 노후화가 아니라 과도한 작전 부담의 결과로 읽힌다.
건조비만 약 130억 달러(한화 약 19조 원), 세계 최대·최신예 항공모함이 세탁실 화재로 전쟁 중 후퇴하는 장면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의 본질은 세탁기가 아니라, 266일간 쉬지 않고 달린 항모와 그 안의 4,000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현실에 있다. 미군이 중동과 인도태평양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세탁실 화재가 의도치 않은 답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