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알콩달콩 살지만 한때는…
코미디언 제명까지 당했던 개그맨 김국진
아직까지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감자골 일화
7년 차 부부 김국진과 강수지의 근황이 공개되면서 김국진의 인품을 볼 수 있는 과거 또한 함께 조명되고 있다.
17일 선공개된 TV조선 예능 ‘조선의 사랑꾼’ 영상 속에는 김국진과 강수지 부부의 근황이 담겨 있었다.
강수지의 생일을 기념해 ‘제1회 수지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 데이트를 진행하기로 한 김국진.
‘모든 것은 수지 마음대로!’라는 모토를 내걸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에 강수지는 “그러면 일단 백화점 식품 코너에 가자”고 말해 김국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후 차를 타고 이동하며 김국진이 “나도 ‘국진데이’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하자 이에 “나는 ‘국진데이’ 그런 거 안 할 거다”고 답한 강수지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수지데이’만 있으면 된다”고 덧붙여 말한 김국진의 모습에서 강수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추억의 뽑기 놀이에 도전하는 김국진·강수지 부부의 알콩달콩 데이트 모습이 담겨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 당한 개그맨
지금은 강수지와의 알콩달콩한 러브스토리로 대중에게 비춰지는 김국진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90년대 초반 일어난 ‘감자골 사태’이다.
1991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되며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김국진.
당시 91년 KBS 대학개그제 출신 멤버들인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은 코미디 크루 ‘감자골’을 결성하였다.
감자골은 강원도를 상징하는 감자와 감자탕의 결합으로, 당시 4인이 팀을 이룰때 박수홍이 김국진에게 “형, 저희 팀 이름 뭐로 하죠?”라고 묻자 당시 감자를 먹고 있던 김국진은 “그냥 이거 (감자)로 하자”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90년대 신인 공채 연예인들은 낮은 출연료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특히 스타급 선배들이 대규모로 타 방송사로 이적하자, PD들은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신입인 감자골 멤버들을 여러 방송에 마구잡이로 출연시켰다.
신입 개그맨들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혹사 당하는 모습을 본 김국진은 PD들에게 스케줄을 조정해달라 사정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과도한 스케줄로 인해 김용만이 몸져눕기에 이르자 김국진의 주도 하에 감자골의 멤버들은 1993년 1월, KBS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보이콧으로 인해 오히려 선배 개그맨들로부터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비판받아야 했다. 결국 이들은 1993년 2월 고별방송을 마지막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감자골 멤버들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까지 당하기까지 했다.
‘유재석급 인기’ 누렸던 김국진
우여곡절 끝에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김국진은 1994년 한국으로 돌아와 방송에 복귀했으며, 이후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출연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한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감 있고 귀여우면서도 어리숙한 이미지의 김국진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수많은 유행어를 양산하고 CF, 연기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전 국민이 김국진에 빠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가 대단해 김국진의 이름과 캐릭터를 딴 ‘국찌니빵’은 월평균 40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연기자로의 활동이 실패하고 건강이 안 좋아졌으며, 전처 이윤성과의 이혼까지 겹치며 슬럼프를 겪었다.
대인기피증에 걸린 탓에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에 들어갔던 김국진. 그러나 김국진의 주변 친구와 지인들이 그를 안쓰럽게 여겨 다시 방송 복귀를 권유했다.
이후 방송에 복귀하고 재기에 성공한 김국진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하고 강수지와의 결혼에도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