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시 손을 맞잡으며 전략적 안정 관계 구축에 합의하자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겉으로는 굳게 닫혀 있던 원자재 수입의 숨통이 트이는 호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서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과 미국 본토 안방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섬뜩한 청구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강대국의 팽팽한 무역 갈등 속에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며 미국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던 한국 기업들 앞에는, 이제 원가 절감의 이점과 점유율 붕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동시에 떨어졌다.
광물 족쇄 풀린 배터리…원가 절감의 마법
가장 먼저 가시적인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대목은 꽉 막혀 있던 핵심 광물과 원자재의 원활한 조달이다.

그동안 미국은 보조금과 첨단제조세액공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중국 등 이른바 우려 국가가 생산한 자재 비중이 높은 배터리를 혜택에서 노골적으로 배제해 왔다.
만약 이번 두 정상의 합의를 계기로 중국산 배터리 음극재에 대한 까다로운 무역 규제가 풀린다면, 당장 미국 현지에서 거대한 생산 공장을 돌리고 있는 엘지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의 원자재 확보는 한결 수월해진다.
음극재는 여전히 중국산 의존도가 절대적이라, 조달이 안정화되는 즉시 천문학적인 생산 비용이 깎여나가는 마법이 일어난다.
자동차 업계 기대감도 크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 중국이 수출 규제를 완화하면, 현대차그룹도 전기차 모터 핵심 소재인 네오디뮴·디스프로슘 등을 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새로운 공급망을 개척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간에 중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웠던 우리 기업들로서는 당장의 묵직한 고정비 부담을 덜어줄 반가운 소식임이 틀림없다.
30% 싼 중국차의 습격…웃지 못하는 현실
하지만 원자재 비용이 싸진다고 마냥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업계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미국이 중국의 배터리와 전기차 소재 수출 제한을 풀어주는 대가로, 중국 기업들에게 미국 현지 직접 투자와 시장 진입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다는 치명적인 반전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중국산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와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때리며 공급망을 철저히 통제하는 사이, 사실상 중국을 완벽히 대체하는 혜택을 독차지하며 북미 시장 점유율을 무섭게 빨아들였다.

만약 무역 장벽이 무너지고 빗장이 풀린다면, 한국산 전기차보다 20~30%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비야디 등 중국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기술력과 확고한 브랜드 가치로 압도적인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오로지 가격 경쟁력 하나로 시장을 잠식하는 중국의 맹공에 밀려 힘들게 쌓아 올린 점유율이 순식간에 쪼그라들 위험이 너무나도 크다.
결국 미중 해빙 무드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국 업계는 원가 절감이라는 달콤한 사과를 베어 무는 동시에 중국의 저가 공세라는 독배를 피해야 하는 가장 잔인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