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지난 14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NATO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한국을 새로운 동맹 모델의 선례로 제시했다.
70년 한미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유럽 안보 전략의 준거점으로 거론된 것이다. 그가 한국을 언급한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동맹 정책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콜비 차관은 “한국은 GDP 3.5% 국방비 지출을 약속한 첫 번째 비NATO 동맹국”이라며 “한반도 재래식 방어를 위한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새 국방전략서(NDS) 작성을 주도하면서 제시한 ‘유연한 현실주의’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GDP 3.5% 국방비는 NATO 기준(2%)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독트린의 핵심, ‘책임 분담’

미국의 전략 변화는 명확하다. 1월 23일 공개된 새 국방전략은 한국이 북한 억제에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충분하다고 명시했다. 서반구 장악과 대중국 견제를 1~2순위 안보 목표로 설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북한 등 다른 위협 대응의 주도권을 동맹국에 이양하는 중이다.
콜비 차관이 제시한 ‘NATO 3.0’ 구상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은 러시아를, 한국은 북한을 각자 ‘주도적으로’ 방어하고, 미국은 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구조다.
지난 1월 26일 방한한 콜비 차관은 한국 측 당국자들과의 면담에서 이 같은 기조를 직접 확인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이 한국군 주도의 한반도 방위 구현을 위해 필수”라고 화답했고, 양측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한국군 주도 방위 역량 강화의 중요한 이정표”로 공감했다. 미국의 전략 전환과 한국의 자주국방 구상이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기회인가, 부담인가

국방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택받은 모범생’이 아니라 ‘필연적 선택을 한 동맹’이라고 분석한다. 콜비 차관이 한국을 극찬한 이면에는 동맹국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국처럼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안보 공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경고다. 실제로 대부분의 NATO 회원국들은 GDP 2%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우려도 존재한다. 안규백 장관이 주한미군의 대중 견제 역할 확대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처럼, 한미 간 이견이 불거질 여지가 있다.
콜비 차관이 “일본·필리핀·한반도 등지에 분산된 군사 태세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시사한다. 한국이 재래식 방어를 주도하는 대신, 주한미군은 대중 견제 전진기지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한미동맹의 설계도

핵잠 도입과 전작권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GDP 3.5% 국방비 증액은 대규모 예산 투입으로 이어질 전망이며, 이는 방위산업 전반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첨단 기술 협력 확대를 기대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은 핵잠 건조를 위한 기술 이전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한국은 70년 동맹사에서 전례 없는 기로에 섰다. 미국이 제시한 ‘모범사례’는 칭찬이 아니라 새로운 책임의 부여다. 재래식 방어 주도권을 확보하는 대신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구조다.
콜비 차관이 강조한 “공정한 분담”이 한국에 실질적 자주국방 역량 강화로 귀결될지, 아니면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지는 앞으로의 협상에 달려 있다. 한미동맹은 이제 ‘보호받는 관계’에서 ‘공동 방위하는 관계’로 전환점을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