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초반, 냉전의 살얼음판 위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는 벼랑 끝에 섰다. 굳건한 혈맹이라 믿었던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내세워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것이다.
북한의 무력 도발은 극에 달하던 절체절명의 시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우산에만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국방과학연구소(ADD)에 극비 지시를 내린다.
“우리 손으로 직접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라.” 당시 소총조차 겨우 조립하던 농업국가 한국이 첨단 무기의 결정체인 탄도미사일을 만든다는 것.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를 완벽한 ‘불가능’으로 단언했지만, 그들은 한민족 특유의 지독한 집념을 전혀 계산하지 못했다.
“설계도도 없는 나라가?”… 워싱턴의 오만과 통제

탄도미사일은 엄청난 자본과 기초 과학이 집약된 강대국들의 전유물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미사일 판매와 기술 이전을 간절히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철저한 거절과 통제였다.
당시 워싱턴의 고위 관료들과 정보 당국은 설계도 한 장 없는 한국이 미사일을 독자 개발하는 것은 10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고작해야 부품 몇 개를 만지작거리다 포기할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관망이었다.
맨몸으로 뚫어낸 ‘역설계’… 1978년 하늘로 솟구친 ‘백곰’
그러나 강대국의 매몰찬 견제는 오히려 한국 과학자들의 초인적인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미국의 지원이 끊기자 연구진은 낡은 미국산 지대공 미사일 ‘나이키 허큘리스’를 완전히 분해해 부품 하나하나의 구조를 파악하는 고난도의 ‘역설계’에 돌입했다. 진공관을 반도체로 교체하고, 밤을 새워가며 추진제 기술을 맨땅에서 일궈냈다.

그리고 마침내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굉음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탄도미사일 ‘백곰’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강대국들이 수십 년 걸려 이룩한 기술을 단 몇 년 만에 따라잡으며, 세계 7번째 탄도미사일 개발국의 반열에 오르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CIA를 패닉에 빠뜨린 한국의 두뇌, 그리고 ‘현무’의 탄생
백곰의 성공 소식은 워싱턴을 말 그대로 경악과 패닉에 빠뜨렸다. 한국의 기술력을 철저히 무시했던 CIA는 한국이 단기간에 미사일을 완성하자 “이러다 곧 핵무기까지 만들 것”이라며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주한 미국대사와 미군 사령관이 총출동해 거칠게 항의하고, 결국 ‘한미 미사일 지침’이라는 족쇄까지 채워야만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한국의 무서운 잠재력에 공포를 느꼈다.

강대국의 제동에 시련도 겪었지만, 이때 축적된 피땀 어린 기술은 오늘날 주변국들을 떨게 만드는 괴물 미사일 ‘현무’ 시리즈의 찬란한 뿌리가 되었다.
강대국의 오만을 지략으로 무너뜨린 ‘자강(自强) DNA’

미국의 무시와 겹겹이 둘러쳐진 통제망 앞에서도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비웃을 때, 한국인들은 묵묵히 연구실을 지키며 기어코 쇳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CIA의 콧대를 꺾고 워싱턴을 긴장하게 만든 이 통쾌한 역사는, 절대적인 열세를 뛰어난 두뇌와 지독한 끈기로 극복해 내는 우리 민족 특유의 ‘자강(自强) DNA’를 완벽하게 증명한다.
남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겠다는 그 위대한 집념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국방 과학은 앞으로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 대단한나라,
잠자는 호랑이가 깨어났다.
하지만, 뒤에 남겨진 자들이 나라를 망치게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