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쌀, 누룽지로 변신해 수출 효자
통일벼로 배고픔 벗어난 한국의 역사
이젠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 앞장선다

“쌀이 이렇게나 수출될 줄, 정말 누가 알았겠어요”
경기도 이천에서 3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김 모(63)씨는 미국 마트에서 ‘임금님표 이천쌀’이 진열된 사진을 보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쌀이 남아돌던 시절, 정부 수매가 끊겨 막걸리 공장에 납품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김 모씨는 “그땐 쌀이 넘쳐 걱정이었는데, 이젠 해외서 찾는다니 가슴이 벅차다”며 “농사짓는 게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K-푸드 열풍 타고 ‘쌀’까지 수출 효자로…이젠 누룽지도 글로벌 간식
K-푸드가 세계인의 입맛을 장악하며 한국 수출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라면, 김치, 불닭볶음면 등 이미 익숙한 인기템을 넘어, 한국인의 영원한 소울푸드인 ‘쌀’까지 글로벌 무대를 당당히 밟고 있다.
특히 경기 이천의 ‘임금님표 이천쌀’은 미국에서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은 ‘글루텐 프리’ 트렌드를 타고 컵누룽지, 미숫가루 등 다양한 가공제품으로 변신해 수출 효자로 떠올랐다.
여기에 강원 철원의 ‘오대쌀’까지 호주와 하와이 등 해외 곳곳에 진출하며 즉석밥, 식혜와 같은 형태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한 톨이 금이었다”…통일벼가 바꾼 한국의 배고픈 역사
한국 역사에서 쌀 한 톨은 그야말로 금이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늘 굶주림과 싸워야 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1960년대엔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쌀 생산량은 그대로여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었다.


쌀이 돈 대신 거래되던 시절, 정부는 심지어 쌀을 아끼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 ‘무미일(無米日)’까지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배고픔에서 한국을 구해낸 건 다름 아닌 박정희 정부 때 개발된 기적의 품종, ‘통일벼’였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엄청났던 통일벼 덕분에, 한국은 1976년에 마침내 쌀 자급률 100%를 돌파하는 기적 같은 ‘녹색혁명’을 이뤄냈다.
이듬해엔 쌀이 넘쳐나 정부가 무려 14년 만에 쌀 막걸리 제조를 허용하며 자축할 정도였다. 비록 맛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지만, 통일벼는 분명 굶주림에서 벗어난 한국의 역사를 바꾼 주인공이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K-쌀’의 감동 역전극

쌀 자급을 넘어 이제 쌀이 넘쳐나자 한국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 시작이 바로 2017년이었다. 정부는 ‘아세안+3 비상 쌀 비축제(APTERR)’를 통해 미얀마와 캄보디아에 총 750t의 쌀을 원조했다.
한때 국제사회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는 당당히 쌀을 나누는 나라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재고 처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국의 성공 스토리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며 국격까지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쌀 원조 경험은 더 큰 꿈으로 이어졌다. 2023년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의 심각한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K-라이스벨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시작은 쌀 소비는 많지만 자급률이 낮은 서아프리카 세네갈이었다. 농촌진흥청은 한국의 통일벼를 현지에 맞게 개량한 ‘이스리(ISRIZ)’ 품종을 개발했다. 이 품종은 기존보다 수확량이 3~4배 많고 맛도 좋아 현지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

이스리의 성공 덕에 가나, 감비아, 기니 등 무려 8개 아프리카 국가가 K-라이스벨트 사업에 합류를 선언했다.
한국은 종자 생산부터 기술 전수, 전문가 파견, 농기자재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27년까지 연간 1만t의 벼 종자를 보급해 3,000만 명의 식량을 책임진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한때 배고픔과 싸우던 나라가 이제 세계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에 식량 안보의 희망까지 심고 있다. K-푸드 열풍 속에서 한국 쌀이 보여줄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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