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담배 사재기 논란
골목상권 상대적 피해 심화
품목 제한 도입 여부 고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영세 상인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나흘 만에 2890만 명이 신청해 총 5조2186억원이 지급된 이번 소비쿠폰. 하지만 골목 가게 대신 편의점으로, 생필품 대신 담배와 고가 전자제품으로 소비가 몰리면서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편의점가 ‘담배 특수’에 골목상권 한숨

“소비쿠폰 나온 첫날부터 어르신들이 담배를 두세 보루씩 사간다”고 서울 영등포구 마트 운영자 A씨가 털어놨다.

하지만 마트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담배 마진율은 5% 수준으로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200원 남짓이다. 일반 상품의 마진율 20~30%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게다가 담배는 보관이 쉬워서 나중에 현금으로 바꾸는 소위 ‘담배깡’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 때문에 소비자들이 담배를 선택한다고 분석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민생지원금 절망편”이라며 소비쿠폰으로 담배 15갑을 구매한 인증 사진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흡연지원금’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편리함을 위해 담배를 선택하는 사이, 정작 지원 대상인 골목상권은 소외되고 있다.

대형 편의점 vs 골목상권, 불공정한 경쟁

소상공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대형 편의점 가맹점 소비가 늘어나면 골목상권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영세 상점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 유도 캠페인 등 추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소비쿠폰 사용이 특정 업종에 집중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는 ‘소비쿠폰으로 담배 사재기하는 법’, ‘편의점에서 에어팟 사는 방법’ 등의 게시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한국편의점산업협회와 간담회를 열고 스마트워치, 고가 전자제품, 외국산 주류 등과 연계한 판촉행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협조 요청일 뿐이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15일에는 소상공인연합회와 만나 영세 소상공인 매출 확대에 방해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받기도 했지만, 뚜렷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품목 제한 논란, 정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전문가들은 구매 품목 제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쿠폰은 소멸성 자산이기 때문에 장기 보관 가능한 담배를 안정적 소비재로 인식해 전환하려는 것”이라며 “담배 구입은 소비 촉진 효과가 작아 품목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흡연과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하면 소비쿠폰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미국 저소득층용 식량 쿠폰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