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인사들이 21시간 동안 마주 앉은 협상 테이블은 스위스 제네바도, 오만의 무스카트도 아닌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차려졌다.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공식 환영을 맡고 아심 무니르 군 참모총장이 실질적인 중재를 주도한 이 이례적인 풍경은 단순한 장소 제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 중재국을 밀어내고 핵보유국이자 미국의 대테러 파트너, 그리고 중국의 핵심 우방인 파키스탄이 전면에 나선 배경에는 치밀한 지정학적 계산표가 숨어 있다.
IMF 구제금융과 중국의 미소
파키스탄이 중재라는 중책을 자임한 가장 큰 원동력은 벼랑 끝에 몰린 자국 경제의 생존본능이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파키스탄 군부가 이번 중재의 성공적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두 가지 결정적 양보를 얻어내려 한다고 분석한다.
하나는 미국이 막대한 지분을 행사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구제금융 승인이고, 다른 하나는 공군 전력의 핵심인 미국산 F-16 전투기의 부품 공급 및 업그레이드 재개다.
미국과 이란을 잇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당면한 국가 부도 위기를 돌파하려는 실용주의적 셈법인 셈이다.
이 판에서 가장 크게 조용한 미소를 짓는 국가는 간접 참여국으로 이름을 올린 중국이다.

중국은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인 경제회랑(CPEC)을 보호하고, 막대한 양을 수입하는 이란산 원유의 안전한 해상 수송로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과 직접 얼굴을 붉히며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대신, 자신들의 확고한 맹방인 파키스탄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중동의 화약고를 관리하는 최적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방산에 열리는 의외의 틈새
파키스탄의 성공적인 줄타기 외교는 지구 반대편 한국의 방위산업에도 예상치 못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파키스탄이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 경제적 보상과 지정학적 안정을 보장받아 국가 재정의 숨통이 트일 경우, 그동안 미뤄왔던 대규모 군 현대화 사업에 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키스탄 공군은 노후화된 구형 전투기와 훈련기의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다.
서방의 기술 통제와 중국산 무기체계의 성능적 한계 사이에서 고심하는 파키스탄에 한국의 고등훈련기 T-50이나 경공격기 FA-50은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미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 시장에서 성능을 입증한 K-방산이 파키스탄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는 틈을 타 서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먼 나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21시간의 협상이 글로벌 외교의 지형을 흔들고 한국의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는 구조적 이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