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21시간 휴전 협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의제는 ‘전쟁 배상금’이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제재 해제와 함께 미국의 배상을 5대 핵심 의제로 들이밀었다.
역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이나 걸프전의 이라크처럼 항복 문서를 쓴 ‘패전국’이 지불하던 배상금을, 오히려 무력 충돌의 한 축인 이란이 미국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지 않는 현대 전쟁의 모호성을 파고든 고도의 외교적 계산표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해액 67조 원, 선공의 딜레마

이란이 배상금을 요구하는 논리적 근거는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 가해자이며 우리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있다.
이란이 요구하는 정확한 배상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과거 중동전쟁의 전후 처리 선례를 보면 그 파급력을 가늠할 수 있다.
1991년 걸프전 직후 패전국 이라크가 유엔보상위원회(UNCC) 결의에 따라 쿠웨이트에 지불한 배상금은 총 524억 달러(약 70조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무력 충돌로 인한 이란의 원유 인프라 파괴와 화폐 가치 폭락 등 거시경제적 타격을 고려할 때, 이란의 청구서 역시 이라크 배상액에 버금가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미국 측은 이란의 이러한 요구를 단칼에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란의 67조 원짜리 청구서는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들의 ‘피해자 지위’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다른 쟁점(제재 해제 등)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푸틴이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
이란의 배상금 요구가 더욱 폭발성을 띠는 이유는 이 선례가 만들어낼 글로벌 파급효과 때문이다.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보전해 주는 ‘가해자 배상’의 선례가 성립될 경우, 당장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후 처리 계산법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WB)과 유엔은 우크라이나의 재건 비용을 4,860억 달러(약 650조 원)로 추산했다.
유엔 총회는 이미 러시아의 배상 책임을 명시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피해 기록 보관소를 구축해 둔 상태다.
이란 협상의 결과가 향후 러시아가 떠안아야 할 650조 원짜리 청구서의 강제성을 판가름할 가늠자가 되는 셈이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지적한다.
무력 충돌의 책임 소재와 피해 보상의 기준이 재편되는 국제법적 변곡점에서, 막연한 동맹의 선의에 기대기보다 냉혹한 배상 논리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