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통신 3사가 ‘통신사’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지우고 있다.
3월 2일부터 5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6’에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한목소리로 “AI 기업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조 단위 투자와 구체적 로드맵을 담은 전면전이 시작됐다.
정재헌 SK텔레콤 CEO는 이번 행사에서 “그동안 ‘1등 사업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명확했다.
전국에 총 1기가와트(GW) 이상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아시아 최대 AI 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 SK하이닉스와 6G 시대 AI 네트워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딩 없이 AI 만든다…통신 3사 ‘차별화 전략’

KT는 6G 네트워크를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닌 ‘AI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단말과 무선망, AI 데이터센터까지 연결되는 백본망 전체를 초저지연 구조로 바꾸고, 데이터 전체가 아닌 핵심 정보만 전달하는 ‘의미 중심 전송’ 기술을 핵심으로 삼았다. MWC 2026에서는 복잡한 코딩 없이 드래그 앤 드롭 방식으로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에이전트 빌더’를 공개하며 노코딩 시장 공략에 나섰다.
LG유플러스는 홍범식 CEO가 국내 통신사 CEO 중 유일하게 MWC 기조연설자로 나서 ‘사람 중심 AI 익시오’ 비전을 글로벌 무대에 천명했다.
홍 CEO는 “음성이 다시 한번 사람들을 연결하는 본질적인 수단이 되게 하겠다”며 통화 맥락 이해, 보이스피싱 탐지, 실시간 정보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 익시오를 스마트 안경,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등과 연결하는 AI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밝혔다.
중국·유럽도 AI 올인…글로벌 통신업계 대격변

AI 중심 전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 3대 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은 MWC 2026 주최 기관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와 공동 이니셔티브를 채택하며 모바일 네트워크를 지능형 적응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류궤이칭 차이나텔레콤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컴퓨팅 역량, 알고리즘, 데이터라는 핵심 측면에서 통합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독자 AI 플랫폼과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차이나모바일은 100km 이상 거리에서도 98% 이상 AI 학습 효율을 유지하는 컴퓨팅-네트워크 통합 기술을 선보이며 데이터센터 간 연결 네트워크 시장을 겨냥했다.
유럽에서는 도이치텔레콤이 통신망, 클라우드, 스마트홈 등 전 서비스 영역에 AI를 내재화하는 전략을 발표했고, 오렌지는 AI와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활용한 산불 대응 플랫폼을 공개했다.
데이터센터 시장 급성장…통신사 수익 구조 변화 예고

통신업계의 AI 전환 배경에는 데이터센터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자리한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26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코로케이션 부문이 34.46%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PC 시장도 2026년 출하량이 1억 4300만 대를 넘어 전체 PC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AI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AI가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운영 시스템에 통합되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통신사들이 기존 음성·데이터 통신 수익 감소를 AI 인프라 사업으로 메우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의 40%가 2026년 말까지 PC에 AI를 내장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네트워크 인프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재헌 SKT CEO의 “기존 사업 모델만으로는 AI 시대 1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발언은 통신업계 전체가 직면한 현실을 압축한다. 스마트폰 보급 포화와 요금 경쟁 한계 속에서, 통신사들은 이제 데이터센터, AI 에이전트, 음성 인식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생존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