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자본과 정밀한 설계도가 투입되는 대형 건설 현장도 결국 레미콘 트럭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콘크리트를 붓지 못한 채 멈춰 서게 된다.
최근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의 휴업이 길어지면서 아파트와 물류센터는 물론 첨단 공장 건설 전반에 차질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철근이나 마감재처럼 창고에 미리 쌓아둘 수 없는 레미콘의 특성상, 운송망에 병목이 생기면 국가 전략산업 현장까지 도미노처럼 공정이 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수십조 원의 투자 규모나 세제 지원책보다 현장에서는 트럭 한 대가 제시간에 도착하느냐가 하루의 공사 진행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믹서트럭 2만 6천 대의 멈춤이 드러낸 공급망의 냉정한 현실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갈등 배경을 살펴보면 회당 운송료를 둘러싼 노사 간의 쉽게 좁혀지지 않는 시각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운송노조 측은 기존 1회 운송료인 7만 5천800원에서 약 6.9% 인상된 8만 1천 원을 새로운 협상안으로 제시하고 나선 상태이다.
앞서 마련됐던 8만 원으로의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단 5천200원의 인상 폭을 둔 협상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조는 유류비와 차량 유지비에 비해 운송료가 부족하다고 보지만, 건설사는 운송료 인상이 곧 공사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맞서는 형국이다.

양측의 대립 속에 지난 12일 오후 5시 기준으로 대형 건설사 25곳의 현장 117곳에서 콘크리트 공급이 일제히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지연된 물량은 약 16만㎥로 집계되었으며, 이를 흔히 볼 수 있는 레미콘 믹서트럭으로 환산하면 대략 2만 6천200대분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휴업 초기였던 지난 9일에는 대형사 12곳의 현장 70곳에서 5만㎥가 지연되었으나, 불과 사흘 만에 그 여파가 세 배 이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수도권 전체 건설 현장이 약 1만 9천 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사로 신고되지 않은 중소형 현장의 숨은 지연까지 포함해 피해는 더 넓을 수 있다.
첨단 반도체 공장마저 흔드는 리스크와 제도적 병목

특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핵심 프로젝트의 타설 일정이 밀릴 경우 공기 지연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물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이후 신규 등록이 제한되어 온 믹서트럭의 수급 조절 심의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달라고 요구한다.
아울러 도심 현장이나 대형 국책사업 구역에 레미콘을 생산하는 배치플랜트 설치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현장의 하루 지연은 양생과 장마 등의 날씨 변수와 맞물려 큰 손실로 번질 수 있기에, 자재 공급과 노동의 가치를 아우르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