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명지녹산산단의 조선기자재 기업들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용접 불꽃과 철판 절단음이 가득하던 이 산단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
그런데 단순히 서버실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입주 기업들이 공장 바로 옆에서 AI 솔루션을 직접 공급받는 구조다.
과연 183억 원짜리 이 투자가 전통 조선산업의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전국 산단 최초 GPU·NPU 엣지 센터, 왜 명지녹산산단인가
부산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2026년 산업단지 엣지 인공지능데이터센터 실증 시범사업’ 공모에서 최종 선정됐다고 13일 밝혔다.
총사업비 183억 원—국비 140억 원, 시비 21억 원, 민간 22억 원—을 투입해 명지녹산국가산업단지에 전국 산업단지 최초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기반의 엣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입지 선택이 단순하지 않다. 명지녹산산단은 국내 최대 조선기자재 집적지다.
선박 엔진·전장 부품·배관 자재를 만드는 수백 개 중소기업이 밀집한 이곳에 AI 인프라를 심는다는 발상은, 첨단 연구단지가 아닌 전통 제조산단에 디지털 전환의 씨앗을 직접 뿌리겠다는 선언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역본부가 사업을 주관하며, 엘리스그룹·부산테크노파크·이지에이아이·건솔루션·포미트 등이 참여한다.
공장 옆 AI—엣지 센터가 기존 데이터센터와 다른 이유

‘엣지(edge)’라는 개념이 낯설 수 있다. 일반적인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서울이나 해외 어딘가에 있고, 공장의 데이터는 인터넷을 타고 그곳까지 왕복해야 처리된다.
반면 엣지 데이터센터는 데이터를 쓰는 현장 바로 옆에 작은 AI 연산 거점을 두는 방식이다.
명지녹산산단 입주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사 공장 데이터를 멀리 보내지 않고 산단 안에서 곧바로 AI 학습·추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센터는 공랭식 AI 모듈형 데이터센터 2개동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지능형 공장·비전 AI 산업안전·가상모형 예지보전 등을 차례로 실증·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국산 NPU 비중을 84%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는, 해외 GPU 의존도를 줄이면서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 확산에도 기여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담고 있다.
시설 구축은 이달부터 시작해 2027년 6월까지 완료하며, 이후 5년간 의무 운영된다.
명지녹산산단, 더 큰 그림 속에 꽂힌 첫 번째 못
이번 엣지 AIDC 유치는 부산이 그리는 더 넓은 판의 일부다. 부산시는 별도로 명지녹산국가산단 인근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2029년까지 건립할 계획도 추진 중이다.
2025년 11월에는 부산이 분산에너지특구로 지정되며 고리원전 전력·해수 냉각 등 데이터센터 입지 강점이 부각됐고, 마이크로소프트의 AI 클라우드용 데이터센터 투자와 LG CNS의 20메가와트 규모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운영도 이미 현실화됐다.

같은 공모에서 창원산단이 5G 특화망을 선택한 것과 달리, 부산은 엣지 AIDC를 택해 조선기자재 제조 현장의 AI 전환이라는 독자적인 경로를 걸어가고 있다.
결국 이번 선정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명지녹산산단 입주 기업들이 AI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장 옆에서 직접 꺼내 쓸 수 있는 공유 인프라를 처음으로 갖게 됐다는 점이다.
전통 조선기자재 산단이 제조 AI 전환의 실험 거점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이 지역 산업 체질이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아직 센터가 완공되지 않은 지금, 진짜 관건은 구축 이후다—입주 기업들이 이 인프라를 실제 생산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녹여내느냐가 183억 원 투자의 성패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