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이런 요양원이 있었어?”…색다른 세상 본 한국 노인들 ‘휘둥그레’

자율과 존엄이 공존하는 노인 주거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요양원의 실체
일본의 선진 고령자 주택 모델
요양원
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연합뉴스, 뉴스1

“요양원에 가면 자유가 없어진다고요? 그곳에선 치매 환자도 자유롭게 외출합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인 주거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으로 불리는 이 시설은 요양원의 돌봄과 자택의 자유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혁신적 시도가 한국 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자유와 돌봄이 공존하는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보험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건강이 허락되는 한 10명 중 9명은 자택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 혼자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반은 여전히 집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시설에 간다’는 말은 대부분의 노인들이 꺼리는 표현이다. 요양시설은 분명 살기 위해 가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입주’가 아닌 ‘입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발적이 아닌 타의에 의해 보내지고,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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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일본에서는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이 탄생했다. 도쿄 인근 우라야스에 위치한 ‘긴모쿠세이'(銀木犀)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일 만난 긴모쿠세이 우라야스의 후모토 신이치로 소장은 이 시설을 “요양시설의 돌봄과 주택의 자유를 합친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긴모쿠세이는 일반 요양시설처럼 간호사의 24시간 간병, 의사의 정기 왕진, 식사와 목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율성’을 핵심 운영 원칙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식사가 가능하면 식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병원에 혼자 갈 수 있다면 왕진 서비스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으로 방을 제공하되, 돌봄은 ‘옵션’으로 선택하는 구조인 것이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노인들,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긴모쿠세이의 자율 원칙은 더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입주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다. 후모토 소장은 “방에서 혼자 술을 마셔도 되고, 1층에서 입주자들과 함께 마셔도 된다”며 “본인의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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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뉴스1

더 놀라운 것은 ‘외출의 자유’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물론 치매환자도 가족의 동의만 있다면 혼자 외출할 수 있다. 실제로 방문 당일 긴모쿠세이 우라야스 지점은 잠금장치 하나 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후모토 소장은 “치매에 걸려도 누구나 밖에 나가고 싶은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 요양시설에서는 치매 환자가 외출을 원하면 직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신경안정제를 투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긴모쿠세이 직원들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며 보내준다. 물론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뒤를 따라 나서고, 환자가 혼란스러워할 때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유도한다.

긴모쿠세이 1층에는 과자 가게도 있다. 오후 2시 30분, 인근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몰려든다. 이때 입주자들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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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뉴스1

직원들은 시간 여유가 있는 어르신들에게 판매를 도와달라고 제안하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손만 움직일 수 있다면 과자를 봉투에 담는 일 같은 소소한 역할을 맡는다.

존엄한 노후를 위한 제3의 선택지

긴모쿠세이의 운영 철학은 ‘자립 지원’에 기반한다. 식사 시간에는 가능한 한 입주자가 직접 밥을 푸고 식기를 반납하도록 유도한다.

후모토 소장은 “일반 요양시설에서는 고령자가 일어서려 하면 쓰러질까 봐 ‘앉아 계세요’라고 제지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그러다 보면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점차 움직이려는 의욕마저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접근법이 실제 효과를 보인 사례도 있다. 96세 입주자 A씨는 과거 누워서만 생활했지만, 긴모쿠세이에 들어온 후 보조기 도움으로 스스로 걷게 됐다. 다른 입주자들처럼 스스로 밥을 퍼 먹고 싶은 마음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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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뉴스1

또 다른 사례는 더욱 감동적이다. 긴모쿠세이에서 임종을 맞은 B씨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도 가족의 도움을 받아 담배를 피웠다. 후모토 소장은 “생전에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혔고, 가족도 동의해 그 소망을 존중했다”고 전했다.

일본 간다외국어대학교 류재광 교수에 따르면, 일본 내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은 2011년 도입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총 8165곳이 등록돼 있으며, 약 28만 명이 이용 중이다.

평균 이용 연령은 84.2세, 월 평균 이용료는 약 11만 엔(약 110만 원)이다. 긴모쿠세이의 경우 집세, 공과금, 식비 등 기본 서비스를 포함한 월 이용료가 220만 원 수준이며, 간병·진료 서비스는 별도 계약이 필요하다.

긴모쿠세이는 일반적인 실버타운과도 차이가 있다. 실버타운이 주로 경증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긴모쿠세이는 장기요양 1등급(중증) 환자까지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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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 출처 : 뉴스1

또한 대부분의 실버타운이 자연환경이 좋은 외곽에 위치한 것과 달리, 긴모쿠세이는 도쿄 도심권인 우라야스에 자리해 도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물론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이 모든 노인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후모토 소장도 “자유와 안전은 공존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술·담배로 인한 건강 악화, 자유로운 외출에 따른 위험은 분명 요양 시설보다 크다.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요양시설이 더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긴모쿠세이는 ‘늙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통제가 아닌 자율을, 보호가 아닌 공존을 지향한다. 집과 요양시설 사이에서 고령자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도 고령자 주거 모델이 단순한 ‘연명’을 넘어 ‘의미 있는 삶’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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