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스페인 방산업체 인드라(Indra) 등과 맺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의 파격적인 세부 내용이 공개되며 방산업계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단순 완제품 수출이나 면허 생산 수준을 넘어, 스페인이 독자적으로 개량하고 제3국에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완전한 기술 이전(IP 제공)’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잠재적 경쟁자를 키워주는 자충수”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지만, 글로벌 방산 트렌드를 읽은 한화의 고도의 ‘세대교체’ 전략이라는 분석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껍데기 빼고 다 준다”… 유례없는 파격 조건의 실체

본지가 입수한 외신과 방산업계 정보에 따르면, 이번 스페인 자주포 도입 사업의 핵심은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닌 ‘기술 구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스페인판 K-9은 한국산의 파생형을 넘어 사실상 스페인의 독자 모델로 거듭나게 된다.
초도 시제품만 한국에서 생산될 뿐, 이미 스페인 히혼(Gijon) 공장에서 본격적인 생산 준비에 돌입했다. 나아가 2027년 두 번째 공장이 기공되면 포신과 장전 체계 등 핵심 부품까지 스페인 내에서 100% 자체 생산하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제3국 수출 허용’이다. 스페인 측은 자국 군 납품을 넘어 노후화된 M109 자주포 교체 수요가 있는 타국 수출까지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한화와 사전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으나, 사실상 ‘스페인산 K-9’이 글로벌 방산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끓어오르는 우려… “미래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

이러한 조건이 알려지자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한 우려가 제기됐다.
K-9은 전 세계 자주포 신규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한 K-방산의 최고 효자 상품인데, 그 핵심 기술을 유럽의 산업 강국인 스페인에 통째로 넘기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과거 튀르키예에 기술을 이전해 탄생한 ‘T-155 프르트나(Fırtına)’ 자주포가 중동 시장 등에서 한국 K-9의 잠재적 경쟁자로 거론되었던 뼈아픈 선례가 있다.
스페인이 이번 기술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서 K-9의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한다면, 장기적으로 한화의 파이를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의 빅픽처… “K-9A1은 끝물, 진짜 승부는 K-9A2부터”

하지만 방산업계 내부의 심층적인 분석을 종합해 보면, 이는 당장의 현금 확보에 눈이 먼 딜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세대교체를 노린 고도의 셈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자금력이 충분하고 자주포를 대규모로 굴리는 주요 국가(폴란드, 핀란드, 인도, 이집트 등)들은 이미 K-9 도입을 마쳤거나 계약을 진행 중이다.
현세대 K-9A1 수준의 시장은 서서히 포화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한화 입장에서는 구형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매각해 막대한 현금을 챙기고, 이를 차세대 무기 개발에 쏟아붓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한화는 현재 완전 자동 장전 장치를 탑재해 성능을 극대화한 차세대 K-9A2 양산을 앞두고 있으며, 무인화 기술이 적용된 K-9A3도 개발 중이다.

스페인이 2033년경 현세대 기반의 자주포 양산 체계를 완비할 때쯤이면, 한화는 이미 차세대 하이엔드 모델로 윗선 시장을 선점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또한 최근 유럽연합(EU)이 역내 방위산업 보호를 위해 무기 도입 시 ‘유럽 내 생산’을 강제하는 기조를 띠고 있다.
한국에서 직접 수출하는 방식이 험난해지는 가운데, 스페인이라는 핵심 회원국을 통해 ‘메이드 인 EU(Made in EU)’ 꼬리표를 달고 수출한다면 오히려 K-방산의 생태계를 넓히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스페인과의 기술 이전 계약은 K-9 자주포가 단순한 쇳덩어리를 넘어, 서방 방산 공룡들처럼 글로벌 무기 체계의 ‘기술 표준’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