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정산 시즌마다 직장인들은 연금저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에 세액공제 한도인 ‘900만 원’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그 이상의 금액을 넣으면 당장 돌려받는 세금 혜택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설계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연간 납입 한도인 1,800만 원까지 꽉 채워 납입하고 남은 ‘세액공제받지 않은 돈’이, 훗날 은퇴 초기 연금 인출 과정에서 막강한 ‘세금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출 1순위는 ‘과세 제외 금액’…세금 0원의 마법
현행 세법과 국세청 규정에 따르면, 연금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는 법으로 정해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계좌에서 빠져나오는 돈은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인 ‘과세 제외 금액’이다. 그다음이 이연퇴직소득, 마지막이 세액공제를 받은 원금과 그동안 쌓인 운용 수익이다.

이 인출 순서의 핵심은,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세액공제받지 않은 원금’에는 인출 시 세금이 전혀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세제 혜택을 받지 않고 넣은 내 원금이기 때문에, 꺼낼 때도 세금을 물리지 않는 과세 제외 재원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10년 모으면 1.2억 원…세금 부과 시점 늦추는 전략
이를 구체적인 사례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혜택이 명확해진다.
가령 연금저축계좌 하나만 운용하는 가입자가 매년 납입 한도인 1,800만 원을 꽉 채워 넣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중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한도는 600만 원(연금저축 단독 기준)이다.
나머지 1,200만 원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 채 계좌에 쌓이게 된다. 만약 10년 동안 이 패턴을 유지했다면, 이 가입자의 계좌에는 1억 2,000만 원이라는 거대한 ‘과세 제외 원금’ 재원이 형성된다.

은퇴 후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법적 순서에 따라 이 1억 2,000만 원의 원금이 가장 먼저 인출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은퇴 초기 수년 동안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세액공제분이나 운용 수익에 붙는 3~5%의 저율 연금소득세, 혹은 15%의 기타소득세 부과 시점을 이 기간만큼 훨씬 뒤로 미루는 효과를 얻게 된다.
“수익은 과세 대상” 주의…세액공제 미신청 증빙 챙겨야
다만 이 전략을 활용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인출 시 세금이 0원인 것은 오직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납입 원금’에 한정된다. 이 원금을 굴려서 얻은 ‘운용 수익’은 과세 대상이므로, 인출 시 마지막 순서로 빠져나오며 정해진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세액공제 미신청 원금에서 발생한 수익이라고 해서 수익까지 비과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실무적으로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금융사나 국세청 전산을 통해 해당 금액이 세액공제를 받지 않았다는 납입 이력이 명확히 확인되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세액공제 한도 초과분은 당장의 절세 혜택은 없지만, 노후의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세금 부과 시점을 이연시키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며 “단순히 900만 원 한도에 얽매이지 말고, 여유 자금이 있다면 연간 1,800만 원 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노후 설계”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