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산을 걷어내자 빈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로 수천억원짜리 계약이 줄줄이 밀려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구글의 역대 최대 규모 태양광·에너지저장 프로젝트의 배터리 공급사로 낙점됐다. 구글이 선택한 건 성능만이 아니었다.
미국 땅에서 이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사실상 한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빼면 남는 선택지
미국이 중국산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를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방향으로 공급망 규제를 조여가자, 북미 시장에는 메울 수 없는 빈 자리가 생겼다.
글로벌 배터리 공급이 넘치는 것처럼 보여도 북미는 2025년 기준 50기가와트시(GWh) 공급 부족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GWh란 대형 도시 전체에 하루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단위다.
맥킨지는 유럽·북미 기업들이 현지 생산 물량을 확보하거나, 아니면 중국산을 들여오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짚었다. 미국은 그 선택지에서 중국을 지웠다.
그 순간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한 답으로 떠올랐다. 이 회사는 미시간 홀랜드, 오하이오, 테네시, 캐나다 등 북미 4개 거점에서 ESS 배터리를 이미 생산하고 있다.
연내 미시간 랜싱 공장도 가동을 시작할 계획으로, 올해 말까지 글로벌 ESS 생산능력을 60GWh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이 중 50GWh 이상을 북미에서 확보할 방침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이 규모의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춘 비중국 기업은 사실상 없다.
LG에너지솔루션, 구글의 선택을 받다

구글과 독립발전사업자(IPP·전력을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민간 사업자) 사이프레스 크릭 에너지가 추진하는 ‘스틸 리버 에너지센터’ 프로젝트는 구글의 글로벌 포트폴리오 가운데 최대 규모의 태양광·ESS 프로젝트다.
초기 2GWh 규모 ESS를 설치한 뒤 2.9GWh까지 확장하며, 2029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한다. 수주 금액은 수천억원대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현지에서 생산한 리튬인산철(LFP) 기반 ESS 솔루션 ‘JF2 DC Link’를 공급한다.
구글이 이 프로젝트를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늘리면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도시 전체와 맞먹는 전기를 쓴다. 구글의 전력 사용량은 지난해 37% 증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24% 늘었다.
구글·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4개사가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의 49%를 차지했다는 통계가 이 흐름을 보여준다.
빅테크 수주 릴레이의 속사정
이번 구글 프로젝트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5월 DTE 에너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이어 구글 프로젝트까지 빅테크 AI 전력 수요와 연계된 초대형 계약을 연속으로 따냈다.
2024년 11월에는 테라젠과 최대 8GWh, 12월에는 엑셀시오 에너지 캐피탈과 7.5GWh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미국 ESS 자회사 버테크(Vertech)를 통해 뉴멕시코 최대 태양광·에너지저장 프로젝트도 수주했다. 2024년 기준 누적 수주 물량만 약 140GWh에 달한다.

결국 이 수주 릴레이의 진짜 의미는 하나다.
중국산을 배제한 미국 시장에서 이 배터리를 현지 생산할 수 있는 비중국 기업이 LG에너지솔루션 외에 없고, 빅테크가 급하게 찾는 재생에너지 저장 물량의 유일한 공급처가 바로 이 회사의 북미 라인이라는 것이다.
규제 공백이 수주 기회로 전환되는 구조가 확실히 작동하고 있다.
앞으로 주목할 변수
미국 ESS 시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미국산 청정에너지 설비에 대규모 세금 혜택을 주는 법) 세액공제 효과에 힘입어 2030년까지 2025년 대비 3배 규모로 확대되고 132기가와트(GW) 설치가 예상된다.
현지 생산을 택한 기업일수록 이 혜택이 더 유리하게 작동한다. 이 구조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5거점 체제는 단순한 생산 확장이 아니라 규제 설계 자체를 타고 들어가는 포석이다.
중국이 막힌 문 앞에 서 있는 한, 그 문 열쇠는 당분간 한 회사가 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