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소식에 재벌 사모들이 눈물 흘린 ‘이 사람’
공부도 잘하고 군복무까지 깔끔하게 마쳐 논란 제로
일반인과 10년 열애 끝에 결혼하는 등 ‘로맨틱’한 면도 있어 화제
쟁쟁한 재계 인사들 가운데서도 학벌, 능력, 인품 등 모든 것이 완벽해서 ‘엄친아’로 불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관이다.
김동관이 결혼할 때 재벌 사모님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도 나돌 정도로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매우 좋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김동관의 어린 시절
김동관은 1983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 내무부 장관의 딸인 서영민 여사였다.
김동관은 어릴 때부터 이미 수재로 불렸다. 중학교 때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으며, 중학교 졸업 후에는 곧바로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명문인 사립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한 김동관은 그곳에서 한인 학생회장을 지냈으며, 교우관계 역시 원만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동관과 하버드 대학교 동문인 정치인 이준석은 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주짓수를 좋아한 동관이 형이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 운동을 한 기억도 있다”고 회상했다.
공군 통역장교로 3년 4개월 동안 복무
대다수의 재벌 2세들은 대학 졸업 후 석사나 MBA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김동관은 하버드를 졸업한 후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공군 통역장교로 입대한 그는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잘한다는 평을 받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냈음을 생각해보면 그의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김동관은 2009년 한국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정운찬 국무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통역 보좌를 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때 조백상 총영사가 김동관에게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갔는데 어떻게 한국어도 이렇게 잘하느냐”고 묻자 김동관은 “어머니가 절대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동관은 3년 4개월 동안 통역장교로 복무한 후 제대하여 병역 논란이 없는 경영인이 되었다.
군 제대 후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하여 경영 수업 시작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하였고, 아버지인 김승연 회장 곁에서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어린 장남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승연 회장은 “나는 그 나이에 회장을 했었다. 나이는 경영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김승연 회장은 부친 김종희 회장이 타계하면서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주변의 우려도 많았지만, 결국 한화그룹을 크게 성장시켜 ‘한화의 두 번째 창업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젊은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아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승연 회장이기에, 후계자가 될 자신의 아들에게는 일찍부터 ‘준비된 과정’을 차근차근 밟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김동관이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비춘 것은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였다.
각국 재계의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승연 회장은 자신의 소개만 간략하게 한 뒤, “자세한 내용은 김 차장이 설명할 것”이라며 아들을 무대에 세웠다.
이때 기업과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김동관은 “기업의 지도자는 이윤보다도 기업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이타주의를 고취시키고 모두를 더 나아지게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대답해 화제가 되었다.
이 자리는 김동관이 한화그룹의 후계자임을 전세계에 알린 중요한 자리였다.
김동관의 깊은 배려심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김동관은 입사 후 매일 새벽 종로 어학원에서 중국어 수업을 들은 뒤 출근했다. 그런데 출근 전 시간이 남으면 곧바로 회사로 가지 않고 집에서 신문을 정독하다가 출근했다.
자신이 일찍 출근하면 직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김동관은 일찍 출근하지도, 늦게 출근하지도 않고 출근 시간을 정확하게 맞췄다고 한다.
또 그는 워낙 책을 좋아하여 평소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책이 가득 담긴 박스가 그의 사무실로 달마다 수 차례 배달되어 올 정도였다.
평소 ‘공부가 취미’라는 소문도 돌 정도로 그는 공부에도 열정이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태양광 사업을 준비하던 동안에는 관련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전문 지식을 쌓기도 했다.
그러한 열정이 결실을 본 것인지 한화큐셀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와 같은 빌딩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김 차장님의 모든 것이 화젯거리였다. 늘 자상해 보이는 이미지여서 여직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와 겸손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인 여성과 10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
그러던 그는 2019년에 결혼을 발표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재벌가 자제가 아닌 일반인 정 씨였다.
정 씨는 김동관의 한화그룹 입사 동기로, 신입사원 연수 과정에서 인연을 맺어 자연스럽게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애는 순탄치 않았다. 김동관의 어머니인 서영민 여사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반인과 결혼한다는 것이 서 여사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동관은 “한번만 보시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고 어머니를 설득했고, 어렵게 마련한 자리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하여 정 씨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 씨의 친언니는 배우 조한선의 아내이다. 조한선은 아내를 처음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숨도 쉬기 어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조한선 아내의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청순한 외모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정 씨가 그의 친동생인 만큼, 정 씨 또한 언니처럼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 돌보면서도 업무에 충실했던 ‘찐 기업인’
2020년에는 한화솔루션이 출범했다. 김동관은 한화솔루션의 부사장 자리를 맡았고,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라 한화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경영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서영민 여사가 별세했다. 서 여사는 미국에서 암으로 투병 중이었지만, 대중에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서 여사가 투병하던 동안 김동관은 한국과 미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모친을 간병했다. 모친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김동관은 아침 6시 전후에 출근하여 본인이 관여하고 있는 사업 모두를 꼼꼼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계 인사들과 김동관의 각별한 인연
현재 한국의 주요 기업 경영인들을 살펴보면 창업주 2세부터 4세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김동관은 3세 경영인으로 사실상 재계의 막내 포지션이다. SK 최태원 회장과는 20살 이상 차이가 나며,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는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김동관은 현대중공업 사장 정기선과 절친한 사이다. 두 사람은 아버지 때부터 교류가 있었는데, 학창 시절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로 가까웠다고 알려져 있다.
정기선과 김동관은 이제 라이벌이 되었다. 과거에는 이들의 사업 영역이 서로 달랐지만, 이제는 조선업과 방산, 태양광 등의 분야에서 맞붙고 있다.
또한 김동관은 이재용 회장과도 각별한 사이다. 때로는 김동관이 이재용 회장에게 경영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하버드대 동문이기도 하다.
사실 재벌가 자녀들은 크고 작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동관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논란도 없었다.
결혼 또한 재벌가끼리의 정략 결혼이 아닌 일반인과 연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이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차기 한화그룹 총수로서 서서히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는 김동관. 앞으로 김동관이 이끌어나가는 한화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