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그린 성장 전략 상반되게 진행
‘반그린’ 미국 vs ‘친그린’ 유럽 갈라져
한국, 성장형 탄소중립 전략 필요성 대두

“미국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재탈퇴하고, EU는 친환경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규제를 완화한다.” 세계 양대 경제권이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는 24일 ‘2025 미국·EU 그린 성장 전략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상반된 그린 성장 전략을 펼치는 가운데, 한국이 이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거대 경제권의 정책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의 ‘반그린’ 정책,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트럼프 2기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글로벌 기후 리더십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 성장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반(反) 그린 정책이 핵심 기조로 자리잡았다.

올해 들어 미국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재탈퇴를 선언했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체제에서 자국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더 나아가 행정명령으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 정책을 공식화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추진했던 친환경 정책에서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보편관세의 대안으로 ‘탄소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비관세장벽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 내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글로벌 탄소중립 노력에는 상당한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EU의 ‘친그린+규제완화’ 전략, 경쟁력 강화에 초점

반면, EU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친(親) 그린 정책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EU의 접근 방식은 친환경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는 균형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해 공급망실사지침(CSDDD), 지속가능성 보고(CSRD),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의 적용 시기를 연기하거나 의무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유럽 기업들이 환경 규제로 인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무역협회 보고서는 EU의 이러한 전략이 친환경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그린 성장’의 실용적 접근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규제는 완화하되 환경 목표는 포기하지 않는 유연한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회는 어디에 있나? 성장형 탄소중립 전략 필요
미국과 EU의 그린 전략이 상반된 방향성을 보이고 있지만, 두 경제권 모두 에너지 안보 확보와 전략산업 성장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러한 정책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특히,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 양 지역 모두가 주목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천연가스 확보를 위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선박, 터미널·저장시설 등 인프라 부문에서 투자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이 화석연료로 회귀하면서 석유화학 플랜트 부문도 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친환경 산업인 전기차의 경우 특히 미국에서 관련 지원이 축소되고 있어 투자 위축과 기술혁신 저하가 우려된다. 필수소비재 분야에서는 친환경 규제 완화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부담이 일시적으로 경감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박소영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각국이 앞다퉈 자국 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도 성장형 탄소중립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SMR과 친환경 선박 관련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제 규약 및 기준 제정 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과 EU의 정책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에게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원자력 발전과 LNG 인프라,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국의 정책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책 변화의 시기에 한국의 친환경 기술력과 제조 역량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