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부터 다르네?!”…드디어 밝혀진 여야 정치인들의 젊은 시절, 남다른 일화에 ‘어머나’

어릴 때부터
남다른 삶을 살아온 정치인들
젊은 시절 사진과 일화 보니 “재밌네!”
정치인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마무리된 가운데, 여야 주요 정치인들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젊은 시절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젊을 때부터 ‘남다른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도 존재한다.

‘국졸’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중앙대 법대’ 들어간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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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청량산 자락에서 5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이후 누나 둘이 요절하면서 다섯째가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그의 꿈은 교사였는데, “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너무 많이 맞아서 나도 애들을 때려보겠다는 복수심 때문에 잠시 가졌던 꿈이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를 왔고,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장이 아닌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이를 반대해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증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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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 기에 왼쪽 손목이 끼어 손목 관절이 으깨지는 골절을 입었다. 그는 결국 이 사고로 인해 장애 6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한 학력이었던 그는 당시 작업반장이 고졸인 것을 알고 “나도 고졸이 되면 작업반장이 될 수 있나 보다”라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한 그는 1982년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그의 학력고사 점수는 285점으로, 서울대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장학금을 고려해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남다른 정의감으로 10년간 판사의 길을 걸었던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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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2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는 유복하지도, 크게 가난하지도 않은 무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촌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이 친구를 사정 없이 때리자, 추미애는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내가 안 나가고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뛰쳐나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때부터 그는 부정부패에 맞설 수 있는 기자나 법조인의 길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7년에는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고시 합격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중 지금의 남편이 된 동기 서성환 변호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만난 지 2년 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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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는 당시 고시 공부를 위해 경남 합천 해인사에 들어갔지만, “서 변호사의 깊은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시는 한 차례 낙방한 후 붙었고, 서 변호사는 추미애에게 자작시가 담긴 편지를 보내며 공부를 응원했다고 전해졌다. 추미애는 1982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는데 건국 이래 16번째 여성 합격자였다.

원래 추미애는 검사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대학교 시절의 은사가 “너는 왜 사람 죽이는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고 말한 것을 듣고 판사가 되었다.

1985년 춘천지법에 부임한 추미애는 공안 당국과 각을 세우며 민주화 시위로 붙잡힌 대학생들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를 족족 기각했다. 당시에 대해 추미애는 “부끄러운 판사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너무 잘생긴 얼굴 때문에 오히려 피곤했다’는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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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조변현은 사업가로 부산에서 ‘고려종합건설’이라는 건설사를 운영하다가, 조국이 대학생이던 1985년에 사학재단인 웅동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이 되었다.

고려종합건설은 전성기에는 도급 순위 60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국의 아버지는 42억의 빚을 남기고 사망했다.

모친 박정숙은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부산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미술은 1990년부터 공부했으며, 조국의 동생을 낳은 뒤 육아와 교직을 겸하는 것이 버거워져 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조국은 198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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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는 정치인 중에서 유독 훤칠한 외모로 유명한데, 젊을 때는 대시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공부하다 보면 우유나 초코파이 같은 것들이 책상에 쌓였고, 여학생이 쪽지를 주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또래 친구들은 그런 그를 부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러다 바람둥이로 찍히겠다” 싶어 여학우들의 접근을 늘 경계했다고 한다. 잘생긴 외모가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해 사시에서 ‘여덟 번’이나 고배를 마셔야 했던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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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원래 꿈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하여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는 부친의 조언을 듣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고시생 시절 사람을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했고, 술자리가 있으면 꼭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량이 부족해져서 1차에는 붙더라도 2차에서 낙방하는 일을 오랫동안 반복했다고 전해졌다.

홍대 근처의 서교 고시원에서 서울대 법대 학생들과 함께 모여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이때 같은 고시원에 다니고 있었던 나경원의 증언으로는 윤석열이 ‘고시원 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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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당시에는 대졸자의 사회 진출이 매우 쉽고 빨랐음을 생각하면, 그의 사회 진출은 꽤 늦은 편이었다.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대학원에 진학하여 법학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송상현은 윤석열을 “인문 사회 분야의 소양이 탄탄했고, 읽은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하던 학생”이었다고 평했다.

남들보다 사회 진출이 늦긴 했지만,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반장을 도맡아 하며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던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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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서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동훈의 아버지는 당시 세계 1위 마그네틱 레코딩헤드 제조사였던 어플라이드 마그네틱스의 한국 법인 대표를 역임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서초구에 살았다. 이른바 ‘강남 8학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다니며 반장을 도맡았던 리더십 있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3년 내내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그는 공부를 잘하면서도 잘난 척하지 않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는 반장으로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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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공평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모범생 한 명과 문제아 한 명이 비슷한 시기에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반장이었던 한동훈에게 모범생을 위한 롤링 페이퍼를 반 친구들과 함께 작성하라고 시켰다.

그러자 한동훈은 “왜 그 친구만 해줘야 하느냐.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런 공평한 태도 덕분이었는지 한동훈이 반장으로 있는 반에서는 일명 ‘불량아’들도 얌전한 태도로 지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성적은 늘 전교 1~3등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일명 ‘문제아’나 ‘꼴찌’로 불리는 아이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만 22세의 나이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

의사에서 CEO를 거쳐 정치인까지, 남다른 행보의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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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동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린 시절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해서 집 건물 옥상에 자기만의 화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학교 앞에서 사온 비실비실한 병아리를 닭까지 키워내기도 했는데, 그만큼 뭔가를 키우는 것에 무척 능했다고 전해진다.

또 기계를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러다가 친척집 괘종시계를 망가뜨린 적도 있다고 한다. 안철수의 이런 취미를 잘 아는 친척들은 그가 집에 오는 날이면 기계란 기계는 모조리 숨겼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까지는 공부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빌렸고 하루 만에 다 읽어서 다음날 곧바로 반납하곤 했는데, 그걸 본 사서 교사는 “얘가 지금 장난을 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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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지만,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분인지 고등학교 때부터는 성적이 일취월장했다. 그 결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의대에 진학한 만큼 본래 직업은 의사였고, 류마티스 내과의 교수가 목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가 된 뒤에도 기계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애지중지하던 컴퓨터에 어느 날 바이러스가 침투했는데, 이 사건은 안철수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밤을 새워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와 씨름한 그는 그때부터 독학으로 컴퓨터를 위한 백신 개발에 몰두하였다.

결국 그는 의사를 그만두고 V3를 개발하여 안랩까지 설립하게 되었으며, 한동안 경영인으로서의 삶을 이어오다가 정치에 투신하는 등 남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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