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 믿었다가…”노후 자금이 통째로 날아갔다”, 노년층 ‘눈물’

강남 오피스가 사기 무대가 되다
은퇴자 노린 조직적 투자 사기
법인 내세운 지능적 범죄 급증

“평생 일해 모은 돈인데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어요.” 한 피해자의 절망적인 목소리가 최근 증가하고 있는 불법 금융 다단계 사기의 현실을 보여준다.

깔끔한 사무실과 전문적인 외양으로 포장된 투자 회사가 하루아침에 증발하면서, 고령층 피해자들이 노후 자금을 잃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테헤란로에 숨어든 가짜 투자 회사들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가 새로운 사기 무대로 떠올랐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국이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 임대 사무실을 활용한 불법 금융 다단계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사기범들이 사용하는 수법은 정교하다. ‘깔세’라고 불리는 단기 임대 방식으로 오피스 밀집 지역에 그럴듯한 사무실을 마련한다. 깔세는 부동산 업계에서 단기 임대나 전대차 계약을 지칭하는 은어로, 사기조직들이 실체 있는 정상 사업처럼 위장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법인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다. 전문 강사를 동원하고 센터장, 지점장 같은 직책을 부여하며 마치 탄탄한 조직인 것처럼 꾸민다. 특히 60대와 70대 은퇴자, 주부, 고령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고수익 보장”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던진다.

하루 2% 수익률의 치명적 유혹

피해자들이 빠져든 투자 상품들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수익률을 약속했다. “매일 투자금의 2%를 지급한다”거나 “원금 보장에 고수익까지 가능하다”는 식의 광고 문구가 대표적이다.

사기조직들의 운영 방식은 치밀했다. 실제 상품 판매는 형식적으로만 진행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투자자에게 센터장과 지점장 등의 직책을 부여했다. 인맥을 통해 추가 투자자를 모집하도록 유도하고, 모집 실적에 따라 후원수당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불법 다단계 구조였다.

초기에는 약속한 수당을 지급해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을 폐쇄하고 조직이 통째로 잠적하는 수법을 반복했다. 투자자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텅 빈 사무실만 남겨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등 신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을 노린 코인 관련 다단계 사기도 급증하고 있다. 고령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복잡한 가상자산 투자를 내세우며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급증하는 조직적 사기 범죄

통계로 확인된 피해 규모는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지역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2만280건으로 전년 동기 1만8718건 대비 8.4% 증가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법인을 이용한 조직적 사기 범죄의 급증이다. 2024년 23건에서 올해 43건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사기범들이 개인 차원을 벗어나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단위로 센터를 개설해 단기간에 대규모 피해자를 모집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가상자산 관련 다단계 사기의 경우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강희은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국장 직무대리는 “투자 제안이나 사업 권유 내용에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민사국에 즉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사무실 임대 기간과 계약 형태를 확인하고, 추천 및 후원수당 중심 구조나 비정상적인 고수익 보장 등의 문구가 나오면 투자 사기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한국특수판매조합, 직접판매공제조합에서 업체의 적법한 등록 여부와 과거 위반 이력을 반드시 확인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