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전에서 화려한 스텔스기나 파괴력 강한 미사일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끊기지 않는 통신’이다.
아무리 수천억 원짜리 첨단 무기를 전방에 배치해 두었더라도, 이를 통제할 지휘통신망이 전파교란(재밍) 등에 의해 마비된다면 그저 눈먼 고철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군의 핵심 핏줄인 통신망을 지키기 위해 한국군과 방산업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외신과 업계 보도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은 최근 방위사업청과 약 866억 원 규모의 ‘군 위성통신체계 성과기반군수지원(PBL)’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화시스템은 2031년 3월까지 육·해·공군 전력에 탑재된 군 위성통신체계의 고장 수리와 정비, 부품 국산화 등 장비 운용을 위한 전반적인 지원을 도맡게 된다.
북한 전파교란 뚫는 고용량·항재밍 통신망
이번 사업은 단순한 장비 수리를 넘어, 대용량 데이터 전송과 고속 항재밍(Anti-jamming) 기능을 품은 위성통신체계의 ‘가동률’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데 핵심이 있다.
최근 한반도 안보 환경은 북한의 지속적인 위성항법장치(GPS) 전파교란이나 각종 전자전 도발이 일상화되면서 통신 인프라의 생존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지상에 설치된 유무선 통신망은 물리적인 타격이나 국지적인 전파 방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반면 우주에 띄운 전용 군사 위성을 활용하면 전시에 지상망이 파괴되더라도 전군이 통합된 음성과 데이터를 끊김 없이 주고받으며 입체적인 기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한화시스템이 이번 계약을 통해 육상의 전차부터 바다의 함정까지 연결하는 위성통신 단말기를 무결점 상태로 유지하게 되면서, 한국군은 유사시에도 적의 교란을 뚫고 지휘 통제를 유지할 든든한 사령탑을 지키게 됐다.
K-방산의 진화…‘판매’에서 ‘유지·운영’으로
방산 및 증권 시장에서는 이번 866억 원 규모의 계약이 K-방산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과거 방위산업의 수익 모델이 전차나 자주포를 한 번 만들어 팔고 끝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무기의 수명 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장기적인 유지보수 중심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의 핵심인 성과기반군수지원(PBL) 제도는 업체가 단순히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해 주는 것을 넘어, 군이 요구하는 장비 가동률 등 특정 성과 지표를 달성하면 대가를 차등 지급받는 선진적인 방식이다.
군 입장에서는 장비의 전투 태세를 항상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어 좋고, 기업 입장에서는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안정적인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를 확보할 수 있어 이른바 록인(Lock-in) 효과가 발생한다.
단순히 하드웨어 무기를 납품하는 수준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통신 인프라를 장기적으로 책임지며 군과 호흡하는 형태로 K-방산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 우주·통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독자적인 위성통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운영 역량까지 입증한 한화시스템의 선제적 행보가 향후 방산 수출의 새로운 무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