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중견 전선 회사에 예상 밖의 성적표가 나왔다. 가온전선이 2026년 상반기에 매출 1조6천330억원, 영업이익 640억원을 기록하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썼다.
놀라운 건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다. 영업이익 증가율(41.8%)이 매출 증가율(27.3%)을 크게 웃돌았다는 것은, 더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더 비싸고 고급한 제품을 팔아 돈을 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요즘 AI 서비스 하나가 돌아가려면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그 안에는 수천 개의 서버가 쉬지 않고 열을 내뿜는다.
전기를 끌어다 서버 구석구석에 나눠주는 장치가 버스덕트(대형 건물·공장에서 전기를 분배하는 금속 케이블 통로)다.
미국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버스덕트 수요는 함께 급등한다.
가온전선은 LS전선과 협력해 미국 빅테크 AI 데이터센터에 버스덕트를 공급하며 글로벌 톱5 공급업체 자리를 굳혔다.
미국산이 없어서 한국산을 찾는다

배전 케이블 사정은 더 직접적이다. 미국 내 전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한국산 배전 케이블 수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 건설까지 겹쳤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도 전기를 실어 나를 케이블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미국 현지 생산법인 LSCUS는 AI 데이터센터와 태양광 발전단지 수요를 동시에 흡수하며 올해 매출이 지난해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가온전선 정현 대표가 “미국 전력 인프라 시장의 구조적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공식 언급한 배경이 여기 있다.
가온전선, 어디서 왔나

1947년에 설립된 가온전선은 전력·통신 케이블을 전문으로 생산해왔다. 2004년 LS그룹에 편입하면서 희성전선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현재 LS전선이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다.
국내에서는 한국전력·삼성엔지니어링·KT·LG유플러스 등에 납품하며 기반을 다졌고, 최근에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팹)에도 배전 케이블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반도체 팹은 AI 데이터센터 못지않게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시설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기 많이 쓰는 곳’이 가온전선의 새 무대가 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이 말해주는 것

결국 이번 실적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가온전선은 단순히 더 많이 판 게 아니라, 고부가 제품인 버스덕트와 특수 배전 케이블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면서 이익률 자체를 끌어올렸다.
AI 데이터센터와 신재생에너지라는 두 개의 거대한 물결이 미국 전력 인프라 시장을 구조적으로 뒤흔들고 있고, 그 수혜가 한국 중견 전선 회사의 수익성 지표에 고스란히 찍히고 있다는 얘기다.
전선이 AI 시대의 숨은 필수재가 됐다는 사실을 가온전선의 이익 곡선이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