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항공모함 갑판 위에서 무인 전투기가 스스로 활주하여 하늘로 솟구친 뒤, 대잠수함 작전과 공중급유 임무를 자율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오는 청사진이 그려졌다.
미 해군은 차세대 함재 무인기의 정밀한 기술 수준과 실현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타진하기 위해 글로벌 방산업계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정보요청서(RFI)를 발송하며 본격적인 기술 파악 절차에 돌입했다.
이번에 공개된 요청서에 명시된 임무는 지상 및 해상 정밀 타격을 포함하여 대잠전, 공대공 교전, 전자전, 정보 감시 정찰, 공중급유, 다목적 군수 보급 등 총 8가지 핵심 분야를 폭넓게 아우른다.
이 가운데 타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시된 기술 조건에는 최소 1,000해리(약 1,852km) 이상의 장거리 항속거리를 확보하라는 고난도 작전 성능 요구를 명확하게 명시했다.
대함 미사일 위협 극복을 위한 항속거리와 함상 자율 작동 기술
해군이 이처럼 엄청난 수준의 항속거리를 확보하려는 배경은 경쟁 국가들이 배치한 정밀 대함 미사일의 도달 범위 밖에서 안전하게 아군 함대를 지키려는 현실적인 작전 구도에서 비롯됐다.
항공모함 전단이 안전지대에 유유히 머무르는 상황에서도 함재 무인기가 수천 킬로미터 밖의 먼 적진을 타격해 줄 수 있다면 유인 전투기 조종사가 직면할 극단적인 생존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그러나 먼 거리를 비행할수록 연료 소비 효율이 급격히 늘어날 뿐만 아니라, 장거리 작전 시 기지와의 통신 상태 유지와 위성 데이터 링크를 활용한 실시간 표적 정보의 미세한 갱신 부담은 더 커진다.
미 해군은 뛰어난 전투 성능을 한 기종에 집중하기보다, 전장에 대량으로 투입하여 적의 공격에 소실되더라도 부담이 적은 경제적인 획득 단가를 유지하는 방향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덧붙였다.
또한 이 무인기는 비와 염분이 가득한 거친 바닷바람 속에서도 고장 없이 견디는 견고한 방염 선체 구조를 갖춰야 하고, 좁은 격납고 보관을 위해 날개를 신속하게 접을 수 있는 별도의 기계 설계를 요건에 올려놓았다.
육상 활주로와 전혀 다른 항모 갑판의 이착함 충격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기가 착륙한 뒤 복잡한 갑판 위를 지상 요원들의 지시 없이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미세 자율 주행 성능까지 요구받는다.
통신이 두절되는 극한의 전파 방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표적의 위협 수준에 따라 스스로 우회 항로를 짜는 임무 자율성과 안전한 아군 공역으로 복귀하는 지능형 소프트웨어의 개발 완성도 역시 정밀하게 살펴본다.
다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탐색한 가상 표적을 최종적으로 유도 무기를 사용해 타격할 것인가의 판단 영역은 기계가 감당할 자율적 범위와 사람이 직접 개입해야 할 통제 범위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확실히 규정해야 한다.
단일 기종 한계를 넘어서는 군함 연동과 다목적 분업 체계
이미 공중급유 전용으로 기대를 모으는 기존 MQ-25 스팅레이의 차기 기동 시험 일정과 달리, 이번 차세대 정보요청서는 공대공 공중전과 은밀한 대잠수함 추적 작전까지 소화할 고성능 신규 기체를 가리킨다.
특히 해군은 항모의 사출 장치 없이도 수직으로 뜨고 내릴 수 있는 수직이착륙(VTOL) 설계를 검토하여, 일반 이지스 구축함이나 원정이동기지선 같은 다양한 함정에서 이 무인기를 분산 운용하는 전술을 세부적으로 검토했다.
다만 헬기와 같이 수직으로 정지 비행을 하거나 보조 프로펠러를 장착하는 복잡한 수직이착륙 설계는 기체의 공차 중량을 늘려 결과적으로 1,000해리 수준의 장거리 항속거리와 고중량 무장 탑재력을 다소 깎아 먹는다.
미 해군은 오는 8월 13일까지 접수하는 글로벌 방위산업체들의 기술 제안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성비 높은 무인기 계열의 가용 능력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향후 독자적인 정식 획득 사업으로의 전환 여부를 정밀하게 가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