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여 체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현행 연장을 유보하고 2036년 만료 가능성이 남은 연례 검토 국면으로 무역 판도를 전환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현행 형태의 USMCA 갱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협정이 최종 종료되기 전까지 효력은 유지하되 매년 공동 검토를 거치는 까다로운 절차를 예고했다.
기존 협정 하에서 특혜 관세를 받으려면 승용차와 라이트트럭 기준 75%의 역내부가가치비율(RVC)을 충족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노동 가치, 핵심 부품 요건 등 복잡한 원산지 조항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 백악관은 협상 과정에서 북미산 비중을 82%로 높이고 그중 50%를 미국산 가치로 채우라는 강경한 요구안을 제시했으나, 이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초기 단계의 미국 측 협상 요구안으로 분류된다.
협상 테이블에 오른 관세 장벽과 현대차의 생산 기지
글로벌 관세 규칙의 유동성이 커지는 흐름 속에서 미국 현지 공장 설립과 생산 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대해 온 현대자동차그룹의 대규모 투자 행보가 새로운 시험 단계를 맞이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북미 시장의 주력 SUV 모델인 투싼과 싼타페, 싼타페 하이브리드, 싼타크루즈를 비롯해 프리미엄 라인인 제네시스 GV70까지 고르게 조립하며 현지 시장 대응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역시 지난 2024년 10월 첫 생산 차량인 아이오닉 5를 출고하며 가동을 시작한 데 이어, 향후 대형 전기 SUV인 아이오닉 9의 양산까지 함께 전개할 채비를 마쳤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8년까지 미국 시장에 총 260억 달러를 투입하여 현지 완성차 생산 능력을 키우고 루이지애나 철강 공장과 로보틱스 시설까지 대대적으로 확충한다는 외연 확장 계산을 세웠다.
엄밀히 말해 USMCA는 북미 3국 간의 교역 시 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협정이므로, 미국 영토 안에서 조립해 미국 내에 판매하는 차량에 이 요구안이 무조건 강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 정부가 전방위적인 별도 관세 장벽과 원산지 증명 압박을 동시에 가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가 부품과 소재의 현지화 비중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산업적 해석이 힘을 얻는다.
미국이 제시한 북미산 82% 및 미국산 50% 가치 조달 조건은 구체적인 계산 방식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으며, 향후 치열한 무역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하는 유동적인 카드로 분석된다.
비록 확정된 법령은 아닐지라도 무역 협정을 둘러싼 이러한 불확실성 자체가 기업에는 유무형의 비용으로 작용하며, 향후 차값이나 인센티브 및 트림 구성에 장기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생긴다.
전동화 공급망의 현지화 속도와 남겨진 과제
특히 배터리와 전력전자 모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장비의 의존도가 높은 전동화 차량의 경우, 부품의 원산지 판정 기준이 까다로워질수록 북미 공급망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이 완성차 조립 공장 신설에만 머물지 않고 철강 공장과 로보틱스 시설 투자를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도 결국 원산지 규정 강화 추세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탄탄한 내수 공급망을 확보한 포드나 GM 등 전통 미국계 완성차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외국계 브랜드인 현대차로서는 부품 현지화 속도를 전례 없이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글로벌 관세 장벽 속에서 주력 SUV와 하이브리드 모델의 가격 경쟁력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조립 공장의 물리적 위치를 넘어 부품 원가와 협력사 생태계까지 현지화하는 정밀한 관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