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방부와 해군이 한국 주요 조선사들을 대상으로 전투함과 중형급 급유함에 관한 정보요청서(RFI)를 발송하며 미국 군함 공급망 진입을 위한 공식 절차에 시동을 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조선 협력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미국 측이 실무적인 형식으로 국내 조선소의 역량을 공식 질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정보요청서에 대해 국내 특수선 분야의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전투함 설계와 건조 역량 부문에 회신을 마쳤으며, 중형급 급유함 부문에는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한 조선 3사가 모두 답변을 제출했다.
이번 조치는 당장 대규모 수주 계약으로 이어지는 단계는 아니지만, 미국이 자국 군함 건조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조선사의 건조 실적과 인력 규모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협력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자국 내 생산 병목에 직면한 미국과 국내 조선사의 현지 협력망
미국이 해외 조선소에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자국 함정 건조 능력의 심각한 병목 현상이 자리 잡고 있어 신속한 군함 확보를 위한 동맹국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해군 함정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특성상 해외 건조가 쉽게 허용되지 않으며, 현재 반스-톨레프슨 수정법 등 강력한 법적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따라서 한국 조선사가 미국 군함 건조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려면 미국 내 법규 완화와 예산 반영, 그리고 현지 조선소와의 정교한 협력 구조가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국내 조선사들은 법적 규제를 우회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미 미국 현지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맺고 다각적인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리조선소를 전격 인수해 전투함 건조를 위한 라이선스 절차를 밟으며 현지 거점을 직접 확보하는 행보를 나타냈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헌팅턴 잉걸스, 제너럴 다이내믹스 나스코 등 미국 대형 조선사들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현지 생산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번 실무 질의는 지난달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는지 물었던 정상 간 대화와 궤를 같이한다.
양국이 지난해 합의한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중 1천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에 투입하기로 한 약속이 정치적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실무 단계로 이행되는 모양새다.
야드 운용 효율화와 기자재 공급망 진입의 과제
미 해군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고부가가치 시장이 열리게 되지만, 보안과 엄격한 품질 인증, 납기 지연 리스크가 커 국내 조선소의 치밀한 셈법이 요구된다.
이미 상선과 해양플랜트, 기존 특수선 물량으로 가득 찬 국내 야드의 생산 캐파와 엔지니어링 인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지가 향후 사업성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실제 계약이 성사되면 대형 조선사뿐만 아니라 특수선 설계 인력, 군함 기자재, 통신 장비 등 국내 조선 기자재 전반의 공급망 확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법적 장벽이 높은 신조 함정 건조보다 기존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와 설계 지원, 기자재 납품 영역이 먼저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