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6월 27일,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처음 격추한 북한 항공기 3대는 F-82G 트윈 머스탱의 전과로 기록됐다. 동체와 조종석이 나란히 두 개 달린 전투기였다.
미 공군박물관은 F-82가 P-51 동체 두 개를 한 날개에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였다고 설명한다. 임시로 두 전투기를 붙인 기체는 아니었다.
원래 목적은 장거리 폭격기 호위였다. 긴 비행에서 조종사 한 명에게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조종사와 부조종사 겸 항법사가 함께 타는 구성을 적용했다.
하지만 양산 기체 인도는 1946년 초에야 시작돼 제2차 세계대전에는 늦었다. 전후에는 레이더를 갖춘 F-82G가 P-61 야간전투기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장거리 호위용 쌍동체 전투기는 다음 전쟁으로 향했다

장거리 호위를 위해 만들어진 설계는 전후 레이더 전투 임무로 이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F-82G 기록에도 조종사와 레이더 관측사가 함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 배치된 F-82G는 전쟁 발발 직후 한반도 상공에 투입된 초기 미 공군 기체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부터 적기 격추만을 위해 출격한 것은 아니었다.
미 공군박물관의 초기 공중전 기록은 민간인 철수와 이를 보호하는 임무를 함께 전한다. 전투기였지만 당시에는 철수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역할도 맡았다.
박물관이 제시한 최고속도는 시속 400마일, 약 644km/h이고 항속거리는 2,240마일, 약 3,605km다. 장시간 비행을 염두에 둔 설계를 보여주는 제원이다.

다만 이 항속거리를 같은 거리의 전투행동반경으로 읽을 수는 없다. 기체가 멀리 날 수 있다는 수치와 실제 전투에서 왕복하며 임무를 수행할 범위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1950년 6월 26일 철수를 엄호하던 F-82 승무원들은 북한기를 마주했지만 민간인 피해 우려 때문에 교전을 피했다. 적기를 발견했다고 곧바로 사격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보호해야 할 민간인과 임무의 우선순위가 교전 판단에 들어갔다. 전투기가 적기를 발견한 상황에서도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가 실제 행동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상황은 달라졌다. 6월 27일 윌리엄 허드슨과 칼 프레이저가 탄 F-82G가 Yak-11을 격추하며 미군의 한국전쟁 첫 공중전 전과를 올렸다.
하루 전 교전을 피했던 F-82는 다음 날 첫 격추를 기록했다

같은 날 찰스 모런과 제임스 리틀도 각각 La-7을 격추한 것으로 박물관은 기록한다. 모런은 자신의 기체가 공격받은 뒤 반격했고, 이날 북한기 3대가 격추됐다.
두 조종석이라는 외형과 3대 격추를 단순한 인과관계로 묶을 수는 없다. 쌍동체 설계는 장거리 임무의 승무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현재 미 공군박물관 전시품도 당시 전투 참가 기체 자체는 아니다. 박물관은 F-82B를 개조해 모런과 레이더 관측사 프레드 라킨스가 탔던 F-82G 모습으로 표시했다고 설명한다.
F-82는 장거리 폭격기 호위용으로 출발해 전후 야간전투 임무를 거쳤고, 한국전쟁에서는 철수 엄호와 첫 격추에 투입됐다. 두 몸통의 외형에는 이런 역할 변화가 겹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