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기업집단이 계열사들로부터 거둬들인 상표권 사용료가 지난해 2조2천239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5년 전인 2020년 1조3천468억원과 비교하면 65% 급증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를 보면 지정 대기업집단 102곳 가운데 80곳이 1천16개 계열사로부터 이른바 간판값을 징수했다. 지난 5년간 연간 수취액은 해마다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갔다.
연도별 총수익은 2021년 1조5천207억원, 2022년 1조7천760억원, 2023년 2조354억원, 2024년 2조1천530억원으로 매년 뛰었다. 그룹 브랜드 가치와 계열사 외형 성장이 맞물린 결과다.
그룹별로는 SK가 3천499억원을 거두며 1위에 올랐고 LG가 3천490억원으로 뒤를 바짝 쫓았다. 이어 한화 1천992억원, CJ 1천331억원, 포스코 1천282억원, 롯데 1천244억원이었다.
계열사 이익 이전 논란과 요율 산정의 이면

상표권 사용료는 통상 계열사 매출액에 일정 요율을 곱해 산출한다. 가령 매출 10조원인 계열사에 요율 0.2%를 적용하면 연간 2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며, 요율 0.1%포인트에 100억원이 움직인다.
브랜드 관리 회사는 상표 출원과 디자인 통일, 대규모 광고 및 평판 관리에 적잖은 비용을 쓴다. 계열사가 공동 브랜드를 통해 영업 신뢰도를 얻는 만큼 사용료 지불 자체는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계열사가 상장사이고 상표권자가 지주회사일 경우 복잡한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상표권료가 과도하게 오르면 상장 계열사의 배당 여력이 줄고 지주사의 배당 재원만 불어나는 탓이다.
지주사와 계열사의 주주 구성이 서로 다르면 그룹 전체의 부는 변함이 없더라도 일반 소수주주와 지배주주 사이의 몫이 엇갈린다. 이사회 승인 요건과 명확한 산정 기준이 요구되는 이유다.

상표권 수수료가 최종 소비자가격으로 직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장 경쟁이 치열하면 계열사가 자체 마진 축소로 충격을 흡수하지만, 독점력이 높으면 판촉을 줄여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공정위가 일부 대기업의 상표권 거래를 점검하는 목적은 사용료 자체를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수관계가 없는 제3자 사이의 거래였다면 책정되었을 ‘정상가격’의 산출 기준을 세우려는 취지다.
상표권료 총액이 늘어난 배경에는 계열사 매출 확대 영향도 자리한다. 동일한 요율이라도 반도체나 방산, 유통 실적이 개선되면 지불액이 함께 뛰므로 금액만으로 부당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요율이 지나치게 낮더라도 특정 계열사가 브랜드 가치 형성에 홀로 기여했다면 다른 계열사가 무임승차하는 문제가 생긴다. 위험과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산출식이 필수적이다.
정상가격 기준 확립과 투명한 공개의 과제

향후 대기업 집단 평가의 핵심 지표는 그룹별 상표권 적용 요율과 지주회사의 실제 브랜드 관리 비용이다. 수취액에서 관리 비용을 뺀 순수익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각 계열사의 영업이익 중 상표권료로 빠져나간 비중이 드러나야 실질적인 재무 부담을 비교할 수 있다. 공정위가 마련할 상표권 정상가격 산정 가이드라인도 향후 거래 관행을 바꿀 변수로 꼽힌다.
5년간 65% 급증한 간판값은 국내 대기업의 브랜드 자산이 커졌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룹 내부의 이익 배분 문제를 시사한다. 그룹 내 거래라는 이유로 불투명성을 방치할 수 없는 배경이다.
2조2천239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어떤 산출식에 따라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이전되었는지 명확히 밝혀야 마땅하다. 정상적인 거래 입증과 세부 정보 공개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선이 된다.



















